[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팀의 에이스인데 3경기 연속 벤치 대기 출전이다.
그런데도 선수와 감독은 "당신밖에 없다"며 이구동성이다. 전주 KCC의 에이스 이정현(32)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잘나가던 KCC가 시즌 초반 불의의 악재를 만났다. 주전 가드로 활약하던 유현준(22)이 부상했다.
9일 서울 삼성전(92대79 승) 3쿼터 경기 도중 가로채기를 시도하려다가 넘어지면서 왼쪽 허벅지 뒷근육을 다쳤다. 10일 전주 지역 협력병원에서 1차 진단 결과 근육 파열 비보를 접하고 정밀검사를 위해 서울로 이동했다,
당분간 유현준의 결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번 시즌 3경기 평균 어시스트 5.67개로 예전보다 기량이 크게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알토란 가드다.
시즌 개막 전 하위권으로 분류됐던 예측을 깨고 완전히 달라진 스피드, 유기적인 농구로 주목받고 있는 KCC로서는 시즌 초반 큰 고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KCC 전창진 감독과 선수들은 크게 낙담하지 않는 눈치다. 대체 자원으로 정창영 신명호 박성진이 있거니와 에이스 이정현을 믿기 때문이다.
사실 전 감독은 요즘 이정현을 보면 가슴 한구석이 '콕콕' 쓰리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부상 투혼이 대단하고, 그래서 더 미안하다.
비시즌 대표팀에 차출됐던 이정현은 부상을 안고 돌아왔다. 팀 훈련을 제대로 하기는 커녕 1주일 정도 개인훈련만 겨우하고 시즌을 맞았다. 다른 선수들은 혹독한 체력강화와 트랜지션 훈련으로 단단히 무장했는데 에이스만 그러지 못했다.
부상 방지와 체력 안배를 위해 선발 명단에선 빠진 채 이른바 '조커'로 기용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전 감독은 시즌 첫 패배였던 원주 DB전(6일)에서 짧은 순간이지만 무척 아팠던 경험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1골차로 초박빙을 벌이던 상황에서 코트에서 뛰고 있던 이정현이 힘들게 뛰는 게 너무 안쓰러워 빼줘야 하나 고민했다는 것. 전 감독은 "에이스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에이스를 빼야 하는 감독의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했다.
평균 출전시간이 26분인데도 평균 11.7득점 4.3어시스트로 자기 몫을 할 만큼 한다. 5일 서울 SK와의 개막전에서 이변같은 승리를 거둘 때 경기 MVP였던 이정현은 9일 삼성전에서도 숨은 공신이었다.
성적표는 송교창(21득점 6리바운드)과 윌리엄스(24득점 9리바운드)가 두드러졌지만 결정적인 한방은 이정현 몫이었다. 73-68로 급격하게 몰렸던 4쿼터 종료 5분여 전. 분위기가 삼성으로 넘어갈 태세였다. 이때 전 감독은 작전타임으로 흐름을 끊었고 이어진 플레이에서 이정현이 3점포를 작렬시켰다. 3번째 시도 만의 첫 성공인데 결정타였다. 벤치에서 이정현을 위한 패턴을 지시해서 나온 골도 아니었다. 반대쪽 정창영에게 상대 수비가 몰리자 빼준 것인데 절묘하게 공간을 확보한 이정현이 마무리했다.
전 감독은 "출전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 해결사 역할을 해준다. 그래서 이정현은 에이스다"면서 "내가 봐도 정말 대단한 선수"라고 엄지를 들어보였다.
후배들도 '이정현 바라기'다. 유현준 부상으로 어깨가 더 무거워진 정창영은 "KCC는 확실한 주전 가드가 없지만 유기적으로 돌아가며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는 농구를 한다"면서 "정현이 형이 도와주기 때문에 너무 무리하려 들지 않고 정현 형과 송교창을 살려주는 플레이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송교창은 "내가 1번 옵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확실한 에이스 정현 형이 있다"면서 "정현 형에게 몸 부딪히는 농구를 배우면서 자신감과 기량이 향상되는 걸 느낀다"고 칭찬 릴레이에 가세했다.
위기에 빠진 KCC? 에이스 이정현에게 물어보면 될 것 같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