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체스터 유나이티드 공격수 제바니 브라운은 과감하게 '파넨카' 킥을 시도했다. 파넨카(Panenka)는 골문 중앙 상단을 향해 공의 아랫부분을 가볍게 찍어 차 골키퍼의 타이밍을 빼앗는 킥. 창시자인 전 체코 선수 안토닌 파넨카의 이름에서 따왔다.
24일(현지시각) 콜체스터 커뮤니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2020시즌 EFL컵 3라운드(32강)에서 0-0 무승부 끝에 맞이한 승부차기에서 스코어 2-2로 팽팽하던 상황. 팀 3번째 키커 브라운의 왼발 파넨카는 골문 중앙으로 날아가는 듯 하다가 골문 우측으로 조금씩 휘어져 갔다. 바로 토트넘 골키퍼 파울로 가자니가가 몸을 날린 쪽이다. 가자니가는 재빠르게 일어나 펀칭했다.
그 순간 하프라인에서 두 손을 꼭 쥔 채 골문을 바라보던 콜체스터 선수들과 홈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머리를 감싸 쥐는가 하면 고개를 저었다. 표정은 '지금 이 상황에서 파넨카를?를 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브라운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군 채 하프라인 쪽으로 걸어왔다.
토트넘에는 절호의 기회였다. 정규시간 동안 75%의 점유율과 19개의 슈팅(콜체스터 4개)을 쏘며 콜체스터를 압도했던 토트넘은 4번째 키커 손흥민이 침착하게 골로 연결하며 이날 경기에서 처음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 번째 키커 크리스티안 에릭센에 이어 5번째 키커 루카스 모우라가 실축하면서 결국 승부차기 스코어 3대4로 패하며 '광탈'(조기탈락을 뜻하는 은어)했다.
충격은 컸다. 콜체스터가 잉글랜드 리그컵인 EFL컵 32강에 참가한 팀 중 리그 레벨이 가장 낮은 4부 소속팀인 데다, 같은 날 하부리그 팀들과 경기에 나선 맨시티, 아스널, 에버턴, 사우샘프턴 등이 모조리 승리하면서 충격패가 더욱 조명을 받았다.
2013년 사우샘프턴 입성으로 잉글랜드 무대에 발을 디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이날 경기 전까지 총 18차례 하부리그팀과 리그컵 경기에 나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었다. 영국공영방송 'BBC'는 "포체티노 감독 경력을 통틀어 최악의 패배로 남을 수 있다"고 밝혔다.
현지에선 이날 경기를 단순한 '1경기 패배'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3시즌 연속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4강에 진입하고, 지난시즌 구단 최초로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나서는 등 상승세를 타던 토트넘은 올 시즌 개막 이후 공식전 8경기에서 단 2승(3무 3패)에 그치는 등 부진에 휩싸였다.
이제 6라운드를 치른 리그에서 선두 리버풀(18점)과의 승점이 10점차로 벌어졌다. 2008년 리그컵 우승 이후 트로피가 없는 토트넘은 그나마 우승 확률이 가장 높아 보이는 리그컵에서 조기탈락했다. '올 시즌에도 무관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더욱 고조됐다.
핵심 플레이메이커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센터백 얀 베르통언의 거취 문제와 포체티노 감독의 레알 마드리드 사령탑 부임설 등 선수단이 각종 루머에 둘러싸여 분위기를 다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올 시즌 3번이나 선제골을 넣은 경기(아스널, 올림피아코스, 레스터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브라운의 실축을 지켜본 한 트위터리안은 "역대 최악의 페널티를 시도하고도 콜체스터가 토트넘을 꺾었다!"고 토트넘의 현실을 꼬집었다. 포체티노 감독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언 코일 전 볼턴 감독은 BBC를 통해 선수들도 감독과 책임을 나눠 짊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