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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기사다] '16㎜ VAR혁명', 기술의 존재이유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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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기술은 감정이 없습니다.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일 뿐,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정답'과 '오답'을 판단하면 그만이죠. 그 세계에서는 16㎜나 16㎝, 또는 16m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기준선에서 넘었느냐 넘지 않았느냐, '0'아니면 '1'. 디지털 세계의 판단은 명료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죠. 복합적입니다. 기준과 규칙을 앞세우지만, 때로는 '전통' '관습', '경험', '감성' '정'이라는 요소를 판단에 결합시킬 때가 많습니다. 그게 '인간적'이라나요. '휴머니즘'은 그래서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아무리 기계의 알고리즘이나 인공 지능(AI)이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사고 방식을 흉내낼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입니다.

최근 국내외 축구팬 사이에 매우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졌죠. 표면적으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나온 VAR 판정에 대한 논쟁입니다. 그런데 국내외 댓글 논쟁을 잘 살펴보면 '기술'과 '전통', '테크놀로지'와 '휴머니즘'의 대립 양상이 엿보입니다. 마치 주기적으로 일어났던 기술 혁명 시기의 논쟁과 비슷한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일단 사건은 개요는 심플하죠. 지난 21일(한국시각) 영국 레스터 킹파워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2020시즌 EPL 6라운드, 레스터시티-토트넘전. 1-0으로 앞서던 토트넘의 오리에가 후반 17분 쐐기골을 넣는 듯했지만, VAR로 취소됩니다. 오리에의 슛에 앞서 볼을 잡은 손흥민이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다는 판정.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은 '손흥민의 어깨 위치가 16㎜(1.6㎝) 앞섰다'고 보도했습니다.

어른의 손가락 한마디 남짓인 16㎜의 판정이 핵심이었습니다. 잉글랜드 축구 레전드들의 격앙된 반응과 별개로 일반 축구팬들도 이에 대한 열띤 토론과 논쟁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댓글 양상은 다양합니다. 영국 데일리메일 관련 기사에는 VAR의 정확성을 인정하는 의견과 16㎜ 오프사이드 판정의 비현실성에 대한 비판, 나아가 VAR을 운용하는 심판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네요.

VAR 판정이 비판적인 사람들은 '16㎜'의 판정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며, 기계적 정확성의 허울 뒤에 숨은 기만이라고 주장합니다.

▶"오직 명확하고 확실한 오류에 대해서만 적용돼야지, 이런 넌센스는 아닌 듯(Should be used for clear and obvious errors not nonsense like this)." (ID half***)

물론 반박 의견도 명확한 논리를 갖고 있는 데요, 엄격한 판정 그 자체로 VAR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죠.

▶"밀리미터, 센티미터, 인치. 얼마가 됐든 오프사이드는 오프사이드지(Millimetres, centimetres, inches. If you're offside you're offside. By how much is irrelevant)." (ID Daily******)

그런 가운데 기술 자체보다 이를 어떻게 운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VAR은 수치스럽지 않다. 판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수치스러울 뿐이다(VAR is not a disgrace, it's the people who make the decisions who are a disgrace)." (ID Steve*****)

국내 팬들의 반응도 이런 흐름과 비슷합니다. 관련 기사에서 가장 많은 호응과 댓글입니다.

▶"오심도 아닌데 …(중략)…인정할 건 인정하자." (ID 으룡타)

시간이 지나며 국내 팬들은 대부분 VAR의 정확성을 받아들이는 양상입니다. 하지만 반박 의견도 만만치 않네요. 들어볼까요.

▶"인간적으로 저 정도는 동일 선상이 맞다. …(중략)…손해보는 건 공격수 밖에 없을 듯." (ID kimh****)

결국 이런 논란이 벌어진 핵심적인 이유는 VAR이 인간의 통상적인 인지범위를 벗어난 영역에 대해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판단의 기준점이 변했고, 이런 혁명적 변화에 사람들이 혼란을 경험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VAR 혁명'이라는 표현도 가능할 것 같네요. VAR이 통상적인 축구 환경으로 자리잡기 전까지 이런 논란은 계속 이어질 듯합니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