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주환 기자]한국의 월드컵 4강 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73·네덜란드 출신)이 최근 중국 U-22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중국축구협회(CFA)는 경질이라고 밝혔다. 중국 신화통신은 '히딩크 감독의 내년 도쿄올림픽 예선 준비가 효율적이지 않았다'고 결별 이유를 설명했다. 후임은 하오웨이 전 중국 여자대표팀 감독이 맡았다.
1년 전, 중국축구협회는 야심차게 히딩크 감독을 모셔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태극전사와 함께 4강 신화를 쓴 세계적인 명장을 통해 중국 축구의 미래 자원들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를 걸었다. 계약기간 3년, 연봉은 한화로 약 50억원(추정)에 달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과 CFA의 밀월은 오래가지 못했다. 계약기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갈라섰다. 히딩크 감독이 지난 1년 동안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냈다고 볼 수 있다. 12경기에서 4승에 머물렀다. 9월 두 차례 친선경기서 북한과 1대1로 비겼고, 국내서도 큰 관심을 모았던 베트남 박항서 감독과의 맞대결에서도 안방서 0대2로 완패했다. 중국축구 전문가는 "이번 9월 친선경기 전에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베트남에 무기력하게 무너진 게 경질에 안 좋은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항서 감독은 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해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인물이다. 둘은 각별한 사이였다.
중국 내부에선 히딩크 감독의 근무 태도에 대해서 안 좋은 시선으로 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망주 발굴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또 중국 선수들의 자질을 저평가하는 발언도 있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측 에이전트는 스포츠조선에 8월에 새롭게 구성된 CFA의 새 집행부가 U-22 팀의 개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히딩크 감독이 경질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축구협회의 새 수장은 슈퍼리그 상하이 상강 구단주 천 수위안이다. 그는 자신을 도울 부회장으로 두 자오카이(FIFA 부회장), 가오홍보(전 중국 남자A대표팀 감독), 쑨웬(전 여자대표 선수)을 선택했다. 이 중에서 가오홍보 부회장이 U-22 팀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가오홍보 부회장이 히딩크 감독과 순지하이 코치(전 중국 A대표 선수)의 그동안 선수 선발 과정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히딩크 감독 경질 이후 순지하이 코치도 사임했다. 순지하이 코치 측은 1년전 히딩크 감독 영입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뒷얘기가 돌았다. 가오홍보 부회장과 순지하이 코치는 과거 악연으로 인해 관계가 좋지 못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중국 축구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도쿄올림픽 예선전이 내년 1월 태국에서 열린다. 한국, 이란, 호주,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같은 강팀들이 참가하며 최소 3위 안에 들어야 도쿄올림픽 본선에 나갈 수 있다. 중국 축구는 2008년 자국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이후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다. 한 중국 축구팬은 히딩크 경질 이후 포털 사이트에 '중국 축구는 끝났다. 세계 최고 지도자가 오더라도 우리를 구할 수 없다. 차라리 여자배구나 탁구를 보는게 낫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축구를 사랑하며 '축구굴기'를 앞세운다. 시진핑 주석의 꿈은 야심차다. 일단 2022년 카타르월드컵 본선에 출전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2050년 월드컵에서 중국의 우승을 목표로 잡았다. 중국 슈퍼리그(CSL) 팀들은 이미 몇해전부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유럽의 저명한 감독과 특급 스타들을 영입했다. 칠레 출신 펠레그리니 웨스트햄 감독이 이미 슈퍼리그를 찍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돌아갔다. 이탈리아 출신 칸나바로 광저우 헝다 감독은 현재 진행형이다.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 헐크(상하이 상강), 벨기에 국가대표 출신 펠라이니(산둥 루넝) 등이 뛰고 있다. 이미 광저우 헝다 같은 경우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르면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냈다.
이탈리아 출신 명장 마르셀로 리피 감독은 지난 1월 아시안컵서 중국 A대표팀 사령탑으로 16강에 그친 후 쓴소리를 하고 팀을 떠났다가 다시 CFA와 손잡았다. 그리고 현재 중국 토종 선수들로만으로는 A대표팀의 전력을 업그레이드하는데 한계를 인정, 외국인 선수 귀화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그 결과 CSL에서 인정을 받은 브라질 출신 공격수 엘케손(광저우 헝다) 등을 귀화했다. 앞으로 추가로 더 귀화선수를 받아들일 예정이다. 이와 함께 중국은 어린 유망주의 체계적인 육성을 위해 독일 등 유럽의 인적 자원과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 축구의 성장세를 현장에서 목격한 한 축구인은 "중국은 서구의 유명 지도자들에게 돈을 투자하는 걸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히딩크 그 이상의 지도자들도 영입할 수 있으며 또 자신들의 뜻 대로 되지 않으면 언제라도 갈아치울 수 있다"면서 "중국 축구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하고 있고, 발전 속도가 빠르지 않아 보이지만 그 내부에선 매우 진지하고 수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귀화 프로젝트가 잘 되면 그 파장 효과는 기대이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