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익명의 '미투(나도 당했다)'는 고발일까 모함일까. 적어도 방송인 양준혁(50)의 스캔들은, 불씨는 남았으되 발빠른 대처로 진화에 성공한 모양새다.
양준혁의 법률대리인인 박성빈 변호사는 19일 "양준혁 관련 글을 SNS에 올린 여성 A씨에 대해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혐의와 협박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글의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는 증거,A씨가 SNS와 메신저 등을 통해 양준혁을 협박하는 정황 등이 이미 확보되었다는 입장이다.
야구스타 양준혁에 대한 A씨의 '미투'는 18일 SNS를 통해 이뤄졌다. A씨는 양준혁의 잠든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하며 "양준혁이 첫 만남에 구강성교를 강요했다. 어수룩한 이미지에 숨겨진 본성을 까발려주겠다"고 예고했다. 양준혁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를 뒤덮었고, 소속사 홈페이지도 마비됐다.
하지만 양준혁은 "유명인이자 남자라는 이유로 공격받고 있다"며 즉각 발끈했다. 그는 A씨와의 교제 및 이별, 사진 속 남성이 자신임을 인정했다. 이어 "악의적 미투는 법적인 절차로 해결하겠다. 오히려 미투 운동의 본질을 폄훼하는 일"이라며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이에 A씨는 SNS를 삭제하고 자취를 감췄다. 이후 추가적인 입장 발표도 없는 상태다.
양준혁과 고용 관계에 있는 방송사들은 입장 발표에는 신중하되 익명의 고발자보다 기존의 신뢰관계를 우선하는 모양새다. 이날 JTBC '뭉쳐야찬다' 측은 스포츠조선에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기 전까지 프로그램 차원의 특별한 조치계획은 없다. 이번주 방송 및 녹화 일정에는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로선 '뭉쳐야찬다'에서 양준혁이 편집될 일도, 차후 하차할 일도 없다는 확인이다.
양준혁이 해설위원으로 일해온 MBC플러스도 좀더 조심스럽긴 하지만, 적어도 대책없이 양준혁을 하차시킬 생각은 없다. MBC플러스 관계자는 스포츠조선의 문의에 "일단 이번주는 (양준혁의)중계 일정이 없다. 다음주 중계는 아직 미정"이라며 "좀더 사태의 진행을 지켜본 뒤 행동하겠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미투'는 피해의 성격상 이렇다할 증거가 없는 사건에 대한 일방적인 고발이다. 사건이 발생한 시기가 고발 시점과 가깝지 않을 수 있고,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는 진술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상적인' 미투 고발에 귀기울인다. 한 인간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 또는 사회적 꼬리표로 남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당당하게 고발한다는 점에서 신뢰감과 정당성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지현, 임은정 검사의 경우가 모범적인 미투 사례다. 사실 여부에 대해 논란은 있으나 유튜버 양예원 역시 자신을 밝히고 피해 사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한 경우다.
하지만 2018년 이른바 '미투 광기' 당시에는 상당수의 미투가 익명성에 숨은 비열한 고발로 변질됐다. 포털 댓글과 온라인 커뮤니티, SNS를 통해 제보자의 정체조차 밝히지 않은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주장이 난무했다. 이에 대한 사실 관계 확인이나 반박은 '2차 피해'라는 비논리적인 용어로 차단당했다.
이번 양준혁의 사례도 현재까지의 진행상황은 마찬가지다. 제보자의 일방적 주장 외에 어떠한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반면, 양준혁은 사실 부분은 인정하되 법적 대응을 통해 추가 대처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양준혁 성 스캔들 논란'으로 불린다는 점에서, 유명인인 양준혁은 이미 '2차 피해'를 입고 있다.
양준혁 스캔들은 정체불명의 고발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냈던 지난해의 '미투 광기'와 달리 우리 사회가 보다 이성적인 대처를 보일 만큼 성숙했음을 증명한다. 이는 야구계의 수퍼스타로서 모범적인 20년의 선수생활은 물론 받은 사랑의 환원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인간 양준혁에 대한 신뢰 덕분이기도 하다. 양준혁의 침착한 대처에 긴장했던 방송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됐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