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전해듣던 '칼레의 기적'이 한국 축구판에서도 일어나는 걸까.
2000년 프랑스에선 4부리그 소속 아마추어 칼레가 '자이언트 킬링'을 거듭하며 프랑스 FA컵 준우승을 차지하자, 언론들은 이를 '칼레의 기적'이라고 명명했다. 다른 리그에서 하부팀이 반란을 일으킬 때면 어김없이 '칼레'를 '소환'했다. 일종의 고유명사가 됐다.
2019년 KEB하나은행 FA컵에선 칼레와 같은 4부(K3리그) 소속의 화성FC가 '화성의 기적'을 준비 중이다. 8강에서 1부팀 경남 FC를 꺾고 4부팀 사상 최초로 준결승에 오른 화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준결승 1차전에서 또 한 번 이변을 연출했다. 18일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현시점 경남(10위) 보다 더 높은 순위에 있는 수원 삼성(6위)을 상대로 1대0 깜짝 승리를 거뒀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티켓이 걸린 FA컵을 제1의 타깃으로 삼은 수원은 국가대표 수비수 홍 철, 호주 대표 공격수 타가트, 베테랑 데얀 등 주전급을 총투입하며 1차전 승리 의지를 내비쳤으나,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인 화성이 오히려 경기를 주도하는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4부 '무적의 팀'으로 불리는 화성은 K3리그에서 선보인 빠른 템포의 공격과 쉴새 없는 방향 전환으로 수원 수비진을 시종일관 당황케 했다. 경기 중간중간엔 어느 팀이 프로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실력차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화성은 전반 15분 K리그 득점왕 출신 유병수의 날카로운 중거리 슛을 시작으로 수원을 마구 흔들었다. 19분 슈팅으로 예열을 마친 문준호가 24분 '사고'를 쳤다. 날카로운 감아차기슛으로 노동건이 지키는 골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는 2016년 고승범 김건희 등과 수원에 입단한 '수원 출신'이다. 수원에서 리그 데뷔전을 치르지 못하고 FC안양 임대를 거쳐 '빅버드'를 떠난 아픔을 지녔다.
문준호의 친정팀 수원은 부진한 경기력으로 일관했다. 전반 데얀 타가트 안토니스의 불협화음으로 이렇다 할 찬스를 만들지 못한 채 전반을 0-1로 마쳤다. 후반 한의권과 염기훈을 투입한 뒤 조금 더 집중력 있는 공격을 펼쳤으나, 5~6명의 선수를 박스 부근에 배치한 화성의 수비벽을 끝내 허물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후반 막바지 한의권의 결정적인 슛이 화성 골키퍼 이시환에게 막혔다. 이날 포함 최근 4경기에서 단 1골에 그친 빈공에 끝내 발목잡혔다. 남은 시즌 6강 싸움과 FA컵 우승에 대한 부담이 더 커졌다. 수원 원정팬들은 하프타임과 경기 종료 직후 수원 선수들에게 야유를 날렸다.
한편, 1996년 출범한 FA컵에서 지금까진 2005년 내셔널리그(실업축구) 소속 울산 현대미포조선(해체)의 결승 진출이 역대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4부팀이 결승행 티켓을 거머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비(非)프로팀이 우승한 적도 없다. 화성이 10월 2일 수원에서 열릴 준결승 2차전에서 패하지 않으면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화성=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