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애플의 하반기 신제품 아이폰11이 공개 된 뒤 국내 소비자들의 주된 반응이다. 주요 글로벌 국가에서 전작(아이폰XR) 대비 낮은 출고가가 책정된 반면, 국내 출고가는 전작과 같이 책정된 탓이다. 출고가 기준으로 국내의 경우 미국보다 비싼 것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 대만, 싱가포르보다 높았다.
국내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하나다. 애플이 하반기 신제품으로 출시한 아이폰11의 출고가가 유일하게 '혁신'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애플은 아이폰 시리즈의 혁신으로 기술을 내세웠지만 아이폰11에서 만큼은 달랐다. 아이폰11 공개 이후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만 섞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애플은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이나주 쿠퍼티노에 있는 스티브잡스 극장에서 하반기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아이폰11 시리즈를 공개했다. 공개된 제품은 기본 모델인 아이폰11, 아이폰11프로, 아이폰11프로맥스 3종이다. 애플은 매년 9월 차세대 아이폰 시리즈를 공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매번 새로운 기술을 도입, '신작 아이폰시리즈는 혁신 집약체'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기술에 소비자와 업계 관계자들은 높게 책정된 출고가에도 매번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아이폰11의 성능과 탑재 기능은 전작과 흡사했다. 굳이 달라진 점을 찾자면 카메라가 3개로 늘었고, 야간 촬영 기능 향상, 무게가 88~226g으로 전작보다 6~17g 무거워졌다는 게 전부다. 디자인의 경우 후면에 3개 카메라가 탑재된데 따른 변화에 그쳤다. 그나마 디자인에 대한 대한 평가는 좋지 못했다. 주요 외신들은 바뀐 후면 디자인에 대해 '인덕션을 장착했다', '면도기가 아니냐'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애플 신제품 출시와 함께 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폴더들폰 갤럭시폴드의 혁신이 주목을 받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아이폰11의 혁신 부재를 언급하며 "5G는 있는가? 접히는가? 물론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미국 IT 전문 매체 시넷은 아이폰11에 대해 "혁신은 없고 의무적인 업그레이드만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업계와 IT전문가들은 아이폰11의 공개 이후 기술 혁신이 아닌 가격에 주목했다. 일각에선 '가격이 혁신'이라고 평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가격이 매년 상승하고 있던 것과 달리 애플은 아이폰11의 출고가를 낮췄다. 미국 기준 아이폰11의 출고가는 699달러, 아이폰11프로는 999달러, 아이폰11프로맥스는 1099달러다.
기본 모델 기준 아이폰11의 출고가는 전작인 아이폰XR(744달러)보다 45달러 가량 저렴하다. 아이폰11프로와 아이폰11프로맥스의 출고가도 전작모델인 아이폰XS, 아이폰XS맥스 보다 낮다. 애플의 아이폰11 출고가 인하 미국 뿐 아니라 글로벌 주요 국가에 그대로 적용됐다. 다만 한국에서만큼은 출고가 인하가 적용되지 않았다.
17일 IT업계에 따르면 애플코리아는 아이폰11의 국내 출고가를 99만원이라고 공지했다. 전작인 아이폰XR의 출고가와 같은 가격이다. 미국 내 아이폰11 출고가 699달러(83만원)과 비교하면 16만원 가량 비싸다. 같은 동아시아권 국가인 일본과 중국, 홍콩 등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국내 출고가 99만원은 일본 7만4800엔(83만원), 중국 5499위안(94만원), 홍콩 5999홍콩달러(91만원)보다 높게 책정됐다.
아시아권 외 국가 출고가와 비교해도 비슷한 현상이 목격된다. 영국과 프랑스, 호주의 아이폰 11 출고가는 각각 729파운드(107만원), 809유로(107만원), 1199호주달러(99만원)로 책정됐다. 국내 출고가와 비슷해 보이지만 전작 출고가와 비교하면 적게는 2만원에서 많게는 7만원 가량 출고가를 낮췄다.
애플코리아 측은 아이폰11 출고가와 관련해 "개별 제품의 구체적인 가격 책정 기준에 대해서는 밝히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아이폰11의 국내 출고가가 전작과 같이 책정된 것은 환율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아이폰XR 발표 당시 원달러 환율은 1128원이었지만 지난 10일 아이폰11 공개 당시 환율은 1192원으로 5.7%가 인상됐다는 것이다. 다만 일본과 중국, 홍콩의 아이폰11 출고가가 전작 대비 7%~15% 가량 낮아진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사실이다.
아이폰 사용자인 윤영지씨(32·회사원)는 "매년 아이폰 신제품이 출시되면 기기변경을 해왔지만 아이폰11의 경우 고민이 된다"며 "기존 모델과 비슷한 가격인 만큼 가격 자체가 부담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한국 체류중인 중국 친구들이 중국 현지에서 싸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자랑을 듣다보면 애플이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는 듯해서 화가 난다"고 말했다.
사실 애플이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는 어제오늘일은 아니다. 신제품이 출시되면 250만~350만대 가량 많은 제품이 판매되는 국가지만 매번 신제품 1차 출시국에서 한국은 제외됐다. 애플은 아이폰11 판매에 있어 한국을 2차 출시국에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아이폰11 출시일 관련 전해 들은 얘기는 없다"며 "과거에 비춰봤을때 10월말이나 11월 초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주요국가에서 제공되는 애플만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도 국내 소비자들의 불만 중 하나였다. 지난해 구형 배터리가 장착된 아이폰의 성능을 일부러 떨어뜨려 논란이 됐을 당시 미국 소비자들의 문제 제기에 즉각 배터리 교환이 이뤄졌지만 한국에선 제대로 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았다.
애플케어 서비스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애플케어 서비스는 애플이 운영하는 자체 보험상품이다. 일정금액을 내고 서비스에 가입하면 애플이 소비자 과실 등으로 문제가 생긴 아이폰에 대해 2회의 수리, 리퍼를 지원한다. 애플은 그동안 중국, 일본, 홍콩 등에서 해당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국내에는 적용하지 않아 소비자 차별 논란을 받아왔다. 애플코리아는 지난 11일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애플케어 플러스 서비스를 국내에 적용한다고 밝혔다. 애플케어 플러스의 가입 모델 범위는 아이폰7부터 아이폰11까지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애플이 지난해부터 이동통신사에 광고비를 전가했다는 갑질 논란과 한국 소비자에 대한 홀대론을 의식해서인지 지난 8월부터 일자리 창출을 알리고, 애플케어서비스 도입한 듯 보인다"며 "이례적으로 글로벌 주요 국가 출고가를 낮춘 상황에서 한국만 제외된 듯 비춰질 경우 애플의 한국 홀대론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