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FA컵의 최고 묘미는 역시 '이변'이다.
토너먼트, 단판승부로 펼쳐지는 FA컵에서는 하부리그팀들이 상위리그팀들을 저격하는 반란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1871년부터 FA컵을 시작한 '축구종가' 잉글랜드에서는 '자이언트 킬러(Giant-killer)'라는 대명사가 만들어졌다. 이변의 대명사는 역시 '칼레의 기적'이다. 1999~2000시즌의 프랑스 FA컵이었다. 정원사, 수리공 등으로 구성된 4부리그의 칼레는 2부리그 칸, 릴에 이어 1부리그 스트라스부르와 디펜딩챔피언 보르도마저 꺾고 결승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칼레의 도전은 '무한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최근 빈도가 잦아졌지만 국내의 FA컵에서도 이변이 있었다. 2004년에 직장인 구단인 재능교육이 16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05년에는 프로팀들을 차례로 따돌린 현대미포조선이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2019년 KEB하나은행 FA컵의 화두도 '이변'이다. 그 어느때보다 이변의 파고가 거세다. 그동안 4강을 독식했던 최상위리그 K리그1팀들은 수원과 상주, 단 두 팀 뿐이다. 나머지 두 자리를 3부리그에 해당하는 내셔널리그의 대전코레일, 4부리그 격인 K3리그의 화성FC가 차지했다. 대진도 재미있다. 이변의 주인공들과 K리그1팀들이 만난다. 대전코레일은 상주와, 화성FC는 수원 삼성과 격돌한다.
분명 이름값으로 보면 한쪽으로 쏠리는 승부다. 규모와 역사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4강까지 올라온 이상, 더이상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다. 대전코레일과 화성FC는 운으로 올라온 팀이 아니다.
대전코레일은 K리그팀들을 연파하며 4강까지 왔다. 32강에서 당시 무패를 달리던 강력한 우승후보 울산을 2대0으로 완파하며 이변의 서막을 알렸다. 16강과 8강에서는 서울 이랜드와 강원을 모두 2대0으로 꺾었다. 결과 뿐만이 아니다. 내용까지 K리그팀들을 압도했다. 미드필드 싸움에서 우위를 보인 대전코레일은 시종 상대를 몰아붙이며 대어를 낚았다.
대전코레일의 장점은 역시 패싱게임이다. 내셔널리그 라이벌인 경주한수원, 김해시청, 강릉시청 등에 비해 스타는 없지만, 아기자기한 패싱게임을 위주로 한 대전코레일의 경기는 보는 맛이 있다는 평가다. 특히 대전코레일은 단기전에 강하다. 리그보다 호흡이 짧은 토너먼트 대회에서 유독 성적이 좋다. 컵대회인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최다 우승팀이다. 3번이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코치 시절인 2005년 이후 14년만에 FA컵 준결승에 오른 김승희 감독은 홈에서 상주를 상대로 4연속 프로팀 깨기에 도전한다. 그는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내일 일은 알 수 없지만 팬들이 항상 힘을 주셨고, 코레일 전직원이 응원해주셨고, 선수들이 열심히 했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즐거움을 주도록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화성FC는 연일 새 역사를 썼다. K3리그팀으로는 최초로 준결승에 올랐다. 2015년 자신들이 세운 FA컵 16강 진출 기록을 훌쩍 뛰어넘었다. 128강전에 해당하는 2라운드부터 참가한 화성은 8강에서 K리그1의 경남을 제압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마추어에 해당하는 K3리그 소속이지만, 전력은 K리그급이다. K리그 득점왕 출신의 유병수를 필두로 K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김동석 문준호 전보훈 박태웅 등이 뛰고 있다. 화성FC는 K리그 출신 선수들의 노련한 경기운영에 유병수를 중심으로 한 한방으로 상위리그팀들을 침몰시켰다.
화성FC에서 눈여겨 볼 선수는 역시 유병수다. 유병수는 한때 태극마크를 다는 등 한국축구가 주목하던 골잡이였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1부리그에서 4부리그까지 추락했다. 하지만 클래스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특유의 득점포를 이어갔다. 특히 상위 무대의 팀들과 만나는 FA컵에서 그의 득점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5경기 연속골, 5경기에서 무려 7골을 폭발시켰다. 수원 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선수다.
간절함으로 무장한 화성FC는 내친김에 결승까지 도전한다는 각오다. 김학철 화성FC 감독은 "우리 팀에는 사연 많고 힘든 친구들이 다수다. 간절함이 중요하다. 들뜨지 않고 긴장하지 않으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