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스포츠조선 권인하 기자]상황을 보면 김광현이 나오는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에이스이자 SK의 에이스인 김광현이 구원 투수로 나왔다. 김광현은 1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홈경기서 6-7로 뒤진 9회초 2사후 마운드에 올랐다. 3타자를 상대해 홈런 1개 등 2안타를 맞고 1실점했다.
8회초 등판한 서진용이 9회초에도 나와 2아웃을 잡을 때만해도 서진용이 이닝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손 혁 투수코치가 벤치에서 나왔다. 투수를 바꾸겠다는 뜻. 손 코치가 나옴과 동시에 SK 불펜에 문이 열렸다. 보통 SK 불펜 투수들은 승용차를 타고 1루까지 온 뒤에 마운드로 향하는데 이 투수는 차를 타지 않고 불펜에서부터 뛰어서 마운드까지 왔다.
마운드로 뛰어오는 동안 장내 아나운서가 투수의 이름을 말했다. "투수 김광현"이란 말에 관중석에서는 놀라움의 탄성이 터졌다. 아무도 김광현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내 김광현을 보게됐다는 기쁨에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그런데 김광현이 나오는 것 자체가 의아했다. 김광현은 지난 11일 인천 키움 히어로즈전서 6이닝을 던지며 90개의 공을 뿌렸다. 불펜 투수로 등판은 가능한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1위 싸움이 치열한 것도 아니고, 이날 경기를 꼭 잡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지고 있는 상황이라 9회에 역전하지 못하면 김광현의 등판은 별 의미도 없어질 수도 있었다.
김광현은 이날 세이브 투수로 나서기로 돼 있었다. 전날 두산전서 28개를 던진 마무리 하재훈이 어깨 근육이 뭉쳐 이날 등판이 어려워지자 김광현에게 SOS를 보낸 것. 보통 때라면 서진용이나 김태훈 중 한명이 마무리로 나서면 되는 것이었지만 이날 선발이 없어 불펜 투수로만 경기를 소화하는 '불펜 데이'를 하기로 해 불펜 투수가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접전 상황에서 리드를 한다면 확실한 세이브 투수가 필요했고, 마침 이날 불펜 피칭을 하기로 돼 있는 김광현에게 세이브 투수를 요청한 것. 김광현은 이를 수락하고 7회부터 몸을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이브 상황이 오지 않았다. 5-5 동점까지는 잘 만들었지만 이후 실점을 해 6-7로 뒤지고 있었다. 김광현을 낼 필요가 없어진 것. 하지만 서진용의 투구수가 30개에 다다르자 다른 투수가 필요해졌다. 이때 김광현이 등판하겠다고 자청했다. 이미 몸을 푼 상태라 아웃카운트 하나 정도는 막겠다고 한 것. 굳이 등판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OK한 김광현의 팀을 위한 쿨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아쉽게 김광현은 첫 타자 황재균에게 솔로포를 맞았고, 이어 장성우에겐 우전안타를 허용했다. 다행히 배정대를 3구 삼진으로 잡고 자존심을 지켰다.
지난 2016년 이후 3년만에 본 김광현의 구원 등판. 결과는 아쉬웠지만 팀을 위한 희생은 본받을만했다. 인천=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