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한국사회를 비춰볼 수 있는 연극 한편이 무대에 오른다.
독일의 요절한 천재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의 '당통의 죽음'을 국립극단이 이수인 각색·연출로 공연한다. 오는 9월 27일부터 10월 13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
'당통의 죽음'은 미완성의 문제작 '보이체크'로 현대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한 뷔히너의 데뷔작이다. 24년의 짧은 생을 살았던 그의 많지 않은 작품들 중 유일하게 살아 생전 발표되었다.
뷔히너는 파격적인 언어와 개방형식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 전통을 따르던 당대에 큰 충격을 안겼다. 특히 이 작품의 주인공 당통은 이상적인 인물과는 거리가 먼 쾌락주의자로 혁명에 반기를 드는 반(反)영웅적 인물이다. 작품이 발표됐을 당시, 언어가 비속하고 구성이 엉성하다는 혹평을 받았지만 뷔히너가 세상을 떠난 후 생생한 묘사와 힘 있는 언어는 많은 문학가들에게 추앙받았다.
'당통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실존 인물 조르주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첨예한 갈등을 다룬다. 특히 열정적으로 주도해온 혁명에 대한 모순을 발견하고 반기를 드는 당통의 모습은 혁명가이기 이전에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의 내용 중 6분의 1 가량은 실제 역사 기록에서 가공 없이 발췌한 것으로 리얼리티를 높여준다.
프랑스 혁명의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가운데 정치가이자 혁명가인 당통은 혁명의 자기모순을 발견하고 후회와 자포자기적 향락에 빠진다. "민중들에게는 사람의 머리 대신 빵이, 피 대신 포도주가 필요하다"는 당통과 철저한 도덕성과 공포정치로 혁명을 완수하겠다는 로베스피에르. 둘은 서로 다투다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되고, 공회와 위원회를 점령한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당통을 체포하기에 이르는데…. 혁명의 대의에 짓밟혀지는 개인에 관한 섬세한 고찰은 '보이체크'에서 사회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어가는 개인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당통의 묘비명엔 이런 말이 적혀있다고 한다. '이 사람에게 많은 죄악이 있었지만, 최대의 죄악인 위선은 없었다.' 대의를 내세운 위선, 특권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매우 시의적절하다.
오랜만에 한국 무대에 오르는 '당통의 죽음'은 리듬감 있는 무대 언어와 음악의 활용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여온 연출가 이수인이 각색과 연출을 맡는다. 이번 작품 역시 라이브 연주 등을 활용해 객석의 몰입을 높인다. 그는 "진지한 화두를 지닌 고전이지만, 관객들이 장황하거나 어렵게 느끼지 않도록 빠르고 힘 있게 작품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통 역에는 백익남, 로베스피에르 역에 엄태준이 캐스팅되었다. 이원희, 주인영, 홍아론 등 국립극단 시즌단원들이 함께 한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