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더그아웃에서 미리 대타 준비를 하고 있더라."
롯데 자이언츠 양상문 감독은 NC 다이노스를 4대1로 꺾었던 지난 9일 경기 후일담을 전했다. 당시 양 감독은 0-0 동점이던 7회말 1사 1, 3루에서 포수 나종덕 대신 이날 벤치 대기시킨 민병헌을 대타로 활용했다. 민병헌은 좌전 적시타로 선취점 획득에 기여했고, 팀의 4대1 승리 및 6연패 탈출에 힘을 보탰다.
양 감독은 "당시 찬스 상황이 왔고, 대타를 기용할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민병헌이 스스로 대타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이어 "선수 스스로 (팀을 위해)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긍정적인 현상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이날 양 감독은 이대호를 6번 타자-1루수로 기용하기도 했다. 부동의 4번 타자였던 그가 6번으로 내려간 것은 4008일 만의 사건. 롯데의 프렌차이즈 스타이자 팀의 중심인 4번 타자 자리에 쉽게 변화를 주면 안된다는 그간의 분위기 등을 따져보면 양 감독이 시도한 변화는 상당한 무게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부분. 이대호는 이날 민병헌의 적시타로 귀결된 선취점으로 연결되는 안타를 뽑아냈고, 수비에서도 제 몫을 다하면서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양 감독은 "이대호가 훈련, 루틴 변화 등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며 "팀에 힘을 보태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 중"이라고 강조했다.
롯데는 그동안 부진 속에서 베테랑들이 구심점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눈에 보이는 기록은 좋지만, 전체적인 팀 기여도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사령탑인 양 감독이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지만, 선수들 스스로 이런 분위기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는 아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대호의 타순 조정과 민병헌의 모습 등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여전히 순위는 바닥이고 반등 가능성도 미지수.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릴 만한 시점에서 선수들 스스로 반전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양 감독은 "이기는 야구를 보러 오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한 경기 한 경기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어쩌면 작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는 롯데 베테랑들의 모습은 지금 시점에서 팬들이 가장 바라는 '근성', '원팀'의 모습이 아닐까.
부산=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