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2019년 6월, 한국축구는 새로운 신화를 썼다.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도, 2002년 한-일월드컵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넘지 못했던 4강을 넘어,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결승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이뤄냈다. 물론 우크라이나에 1대3으로 패하며, 아쉽게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지만 결승 진출만으로도 대단한 결과다. 한국축구사에 없었던 '천재' 이강인(발렌시아)을 중심으로 K리그가 만들어낸 젊은 태극전사들이 만든 쾌거다. 이제 모두의 눈은 이 놀라운 성과를 거둔 '황금세대'가 이끌 새로운 시대로 모아지고 있다.
▶황금세대의 성패는 각급 대표팀의 연계에 달려 있다
축구계에는 '황금세대'라는 말이 있다. 포르투갈이 1989년, 1991년 U-20 월드컵에서 2연패에 성공하며 등장한 표현이다. 루이스 피구, 후이 코스타, 페르난두 쿠투 등이 중심이 된 이 세대는 이후 유로2000 4강을 시작으로 유로2004 준우승, 2006년 독일월드컵 4강 등을 이끌며 변방으로 밀렸던 포르투갈을 다시 세계 축구의 주류로 끌어올렸다.
이번 대표팀은 '황금세대'라는 표현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적어도 재능 측면에서는 그렇다. 이강인이라는 세계가 주목하는 에이스가 있고, 과거와 달리 K리그에서 입지를 넓힌 선수들도 제법 된다. 이번 월드컵 준우승을 통해 국제무대 경험과 어떻게 하면 세계 무대와 경쟁할 수 있는지 노하우까지 더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황금세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다 지속적인 성공'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축구협회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과거 한국축구는 '한국식 황금세대 모델'을 만들었다. 홍명보호였다. 협회는 홍 감독에게 전권을 주며 2009년 U-20 월드컵 8강을 이룬 멤버들을 중심으로 2010년 아시안게임, 2012년 올림픽까지 치렀다. 사상 첫 동메달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 성공에 고무된 협회는 고 이광종 감독에게 그 같은 시스템을 맡기려 했지만 별세로 계획은 중단됐다.
이번 대표팀은 물론 현재 18~20세 연령대 선수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 감독이 '황금세대'를 이끌고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지만, 현재 협회의 대표팀 운영 시스템은 이미 확실한 축을 형성한 상황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A대표팀, 김학범 감독이 올림픽대표팀, 정정용 감독이 그 밑에 연령대 대표팀을 맡고 있다. 벤투 감독과 김학범 감독이 확고한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만큼, 이 시스템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 감독 역시 이번 대회 최고의 성과를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고, 큰 경험을 준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이번 세대가 자연스럽게 상위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합류하면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한국축구 대표팀을 총괄하는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필요하면 세 대표팀 코칭스태프들을 자주 만나게 해야 한다. 선수들 정보는 물론 대표팀 운영 전술, 철학 등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을 열어줘야 한다. 미팅은 물론 지난해 12월 울산에서 합동훈련을 했던 것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미 김학범 감독은 폴란드 현지에서 경기를 관전하는 등 황금세대 흡수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고무적인 일이다.
▶선수들은 뛰어야 산다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는 '이 재능 넘치는 선수들의 경기 경험을 어떻게 충족시켜주느냐'이다. 수년간 한국축구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다. 한국축구는 꾸준히 새로운 재능을 배출하지만 '이 재능이 기대만큼 성장했느냐'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 어렵다. 가장 많이 뛰어야 할 연령대 임에도 충분한 경험을 쌓지 못하고 도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대표팀이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2년 전보다 프로 경험을 한 선수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미성년자와 프로 계약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했다. 22세 이하 선수들을 강제로 출전시키는 '22세룰'이 자리 잡으며 경기에 뛰는 선수들도 늘어났다. 하지만 그 기회는 일부 선수들에게, 제한적으로만 주어지고 있다. 이들이 더 많이 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냉정히 말해 20세 이하 선수들이 바로 1군 무대에서 뛰기란 쉽지 않다. 당장 이번 대회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이광연(강원) 골키퍼만 하더라도 현재 김호준의 벽을 넘기가 힘들다. 이들이 뛰어야 하는 R리그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감독들 역시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육성을 위한 대승적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선수들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더 넓은 무대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이강인에서 보듯, 큰 물에서 노는 선수들이 확실히 다르다.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에 도전하면, 그만큼 얻는 것도 많아진다. 좋은 기회가 오면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번 대회를 통해 분명 세계와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 자신감이 충만한 지금이 기회다. 일부 선수들은 유럽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정 감독 역시 "선수들이 발전하는 것이 운동장에서 보인다. 경기력을 통해서 발전도 하지만 자신감 그 자체로 발전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아마도 우리 선수들은 한국 축구에서 향후 5년~10년 안에 자기 포지션에서 최고가 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좀 더 큰 무대를 접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