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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년 한국축구사 새로 쓴 '스무살' Z세대, 그들은 DNA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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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Z세대' 젊은 태극전사들이 137년 한국축구사를 새로 썼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20세 이하 대표팀은 12일(이하 한국시각) 폴란드 루블린 아레나루블린에서 열린 에콰도르와의 2019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4강전에서 전반 39분 터진 최 준(연세대)의 결승골을 앞세워 1대0으로 이겼다. 이날 승리로 정정용호는 한국 남자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올랐다. 한국은 16일 오전 1시 우크라이나와 결승전을 치른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쾌거다. '16강도 쉽지 않다'는 세간의 시선을 온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바꾸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태어난 이른바 'Z세대(Z는 알파벳 마지막 글자로 20세기에 태어난 마지막 세대를 뜻함)'들로 구성된 정정용호는 월드컵이라는 이름 앞에서 주눅 들던 기존 세대들과는 애초에 DNA부터 다르다. 언제나 흥이 넘치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다. 그러면서도 '원팀'이라는 책임감과 승부처 앞에서의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월드컵을 즐기며 새로운 역사를 쓴 약관의 젊은이들, 우울함의 연속인 2019년, 대한민국에 전하는 새로운 힘이자 희망이다.

▶유쾌DNA

Z세대는 타인의 가치관을 그대로 좇기 보다는 '나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넘치는 흥을 자연스럽게 표출한다. 국내 최종 소집 후 첫 훈련이 벌어지던 날. 파주NFC 훈련장 한 켠에 마련된 대형 스피커에서 최신 클럽송들이 흘러나왔다. DJ는 대표팀의 '흥 3대장' 중 하나인 이강인. 음악 선정에 한창인 이강인은 "기분이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나는 K팝도 듣고, 스페인 노래도 듣고, 팝송도 듣는데 형들은 팝을 안좋아한다. 형들 때문에 못살겠다"고 웃었다.

더 중요한 것은 분위기다. 심장을 뛰게 하는 노래 속에 선수들은 모두 웃으며 훈련에 임했다. 2년 전부터 자유로운 분위기 속 훈련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정정용호에 '경직'이라는 단어는 없다. 경기 전 라커룸에서도 음악이 흘러나온다. 포르투갈전 패배 후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남아공과의 2차전을 앞두고는 싸이의 '챔피언'을 틀었다. 텐션을 올려준 노래의 효과일까. 정정용호는 기분 좋은 첫 승을 챙기며 16강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선수들의 흥을 올려주는 음악 속에는 숨은 비밀이 있다. 정정용 감독은 "국제대회에 나가면 경기 전에 음악이 나온다. 선수들이 그 분위기에 익숙해져야 편안하게 경기할 수 있다. 그것을 대비해 2년 전부터 꾸준하게 훈련했다"고 했다.

워밍업과 피지컬 훈련을 마치면 음악이 꺼진다. 분위기가 바뀐다. 무서운 집중력으로 전술 훈련에 임한다. 인자한 정 감독도 선수들의 실수에 호통을 친다. 선수들도 지적에 고개를 끄덕인다. 놀때는 놀고, 할때는 확실하게 하는 것, 그것이 정정용호를 만든 힘이었다.

▶솔직DNA

Z세대는 유년 시절부터 스마트폰 등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디지털 원주민' 답게 '숨소밍'(숨 쉬듯 소신을 말함)에 능하다.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는다. 정정용호에 조기 합류한 이강인의 목표는 처음부터 '우승'이었다. 그는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팀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는 팀이고 가능성이 있다"고 당당히 말했다. U-20 월드컵을 앞두고 으레 젊은 선수들이 하는 호기만으로 치부하기에, 이강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자신만만했다. 이강인의 목표의식은 팀 전체에 퍼졌다. 너도 나도 '우승'을 말하기 시작했고, 결국에 정 감독 역시 "선수들이 말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강인의 별명인 '막내형'은 정정용호의 팀 분위기를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다. 탁월한 실력을 바탕으로 동료들의 신뢰를 받는 이강인은 가장 어린 나이지만, 정정용호의 리더였다. 막내라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형들 역시 합리적인 의견이라면 적극적으로 따랐다. 지난 일본과의 16강전에서 화제가 된 우렁찬 애국가 제창은 이강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이강인은 "포르투갈전 때 상대 선수들이 국가를 크게 부르는 걸 봤다. 경기 전 기싸움에 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이는 정정용호의 경기 전 하나의 의식처럼 됐다.

이강인 뿐만이 아니다. 다른 선수들 모두 능숙하고 세련된 인터뷰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누구를 탓하거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다. 밖으로 전하는 말 속에 책임감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정정용호를 만든 힘이었다.

▶위풍DNA

세네갈과의 8강전이었다. 전반 37분 케빈 디아네에게 선제골을 내준 후였다. 주장 황태현(안산)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모였다. 고개를 숙이는 대신 대화를 주고 받으며, 자신들의 실수를 분석하고 분위기를 정리했다. 이 전 대표팀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장면이었다. 이후 한국은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계속된 VAR, 물고 물리는 대접전 속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했고, 결국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 갔다.

이같은 장면은 승부차기에서도 이어졌다. 연장 후반 종료직전 동점골을 내주며 다잡았던 승리를 눈 앞에서 놓친 한국은 1, 2번 키커 김정민(리퍼링) 조영욱(서울)이 연이은 실축을 범했다. 누가봐도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젊은 태극전사들은 흔들리지 않았고, 기어코 역전에 성공했다. 에콰도르와의 4강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최 준의 결승골에 앞서 이강인이 보여준 놀라운 페이크는 그의 센스만이 아니라 담대함이 만든 장면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상황이 어떻든 승부처마다 보여준 선수들의 냉정하고, 차분한 모습, 그것이 Z세대 선수들이 보여준 특별한 장점이었다.

정정용호가 더욱 특별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원팀'으로 넘었다는 점이다. 이강인은 승부차기를 앞둔 이광연(강원)을 붙잡고 "형 할 수 있어"를 외쳤고, 첫번째 실축 후 고개 숙인 김정민을 안아준 것은 이광연이었다. 이강인 같은 천재도 튀지 않는 곳, 누가 골을 넣어도 함께 세리머니를 펼치고, 승리 후 모두가 즐거워하는 곳이 바로 정정용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