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노블(프랑스)=전영지 기자]"나이지리아전, 죽기 살기로 뛰어야죠."
11일(한국시각) 프랑스 그르노블 스타드 브누아 프라숑 훈련장에서 만난 윤덕여호의 부주장, '베테랑 풀백' 김혜리(29·인천 현대제철)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했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여자축구대표팀은 12일 오후 10시(한국시각) 프랑스 그르노블 스타드데잘프에서 펼쳐질 국제축구연맹(FIFA) 2019 프랑스여자월드컵 조별리그 A조 2차전에서 나이지리아와 맞붙는다. 1차전 A조 한국은 프랑스에 0대4로, 나이지리아는 노르웨이에 0대3으로 졌다. 한국-나이지리아전은 16강 승부처다. 프랑스에 대량실점한 한국도, 최강 프랑스와 최종전을 남겨둔 나이지리아도 승점 3점이 절실한 한판 승부다.
김혜리는 자타공인 윤덕여호 '투혼의 아이콘'이다. 누구보다 많이 뛰고, 누구보다 헌신하는 선수다. 폴란드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남자축구 후배들의 4강 기적을 지켜보며 김혜리는 9년 전인 2010년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지소연, 임선주 등과 함께 3위에 올랐던 때를 떠올렸다. "월드컵은 모두가 꿈꾸는 무대다. 누구에게나 간절한 무대다. 우리도 20세 이하 대회에서 3위를 해봤다. 비록 첫 경기를 졌어도, 남은 2경기를 잘하면 토너먼트에서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했다. 김혜리는 10년째 축구 절친들과 대표팀에서 동고동락하며 생애 두 번째 월드컵을 뛰고 있다. 4년전 캐나다월드컵 조별리그 최종 스페인전에서 2대1로 승리하며 사상 첫 16강 역사를 직접 썼다.
베테랑 김혜리가 프랑스와의 개막전, 가장 아쉬웠던 것은 패배라는 결과보다, 패배의 과정이었다. "오랫동안 동료들과 함께 정말 힘들게 준비해왔다.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못해보고 졌다는 것이 속상했다. 수비수로서 실점이 많았고, 공격수들이 수비적으로 치우치다보니 공격수들에게 미안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혜리는 사실 공격본능이 뛰어난 풀백이다. WK리그 1강 인천 현대제철에선 라인을 올려 공격 작업에 적극 가담한다. 그러나 강호들을 잇달아 상대해야 하는 월드컵에서는 공격보다 수비 안정감이 우선이다. "현대제철은 리그 최강팀이기 때문에 많이 올라서는 편이다. 하지만 월드컵에서는 우리보다 약팀이 없다. 플레이스타일이 많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프랑스와의 개막전, 김혜리는 기회가 찾아오자 거침없는 중거리 슈팅으로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프랑스전을 뒤로 한 채 나이지리아-노르웨이전을 꼼꼼히 분석하고 있다. 뒷공간을 파고드는, 빠르고 강한 측면 공격수들이 즐비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풀백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김혜리는 "나이지리아가 노르웨이에 0대3으로 졌지만 점유율에서는 차이가 많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아이사트 오쇼알라(8번)는 빠르고 위협적이다.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리옹을 상대로 골도 넣었다. 그 외에도 좋은 선수가 많다"고 귀띔했다. "나이지리아전은 실점 없이, 꼭 골을 넣고 이겨야 하는 경기다. 수비수로서 책임감을 갖고 뛰겠다. 분명 우리 공격수 중 누군가가 득점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전 필승 전략도 마음에 새기고 있다.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경험해본 아프리카팀은 분위기에 많이 좌우된다. 분위기를 쉽게 내주면 기가 살아서 경기 운영이 힘들어진다. 초반부터 강한 압박을 통해서 분위기를 먼저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나이지리아전을 앞두고 윤덕여호는 배수진을 쳤다. 김혜리는 "저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노르웨이전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나이지리아전 승리에 올인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하루 더 쉬었기 때문에 체력적인 여유도 있다. 경기 끝나고 이런저런 핑계 댈 것 없다. 운동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뛰고, 누가 뛰든지 준비한 100%를 보여줘야 한다. 죽기살기로 뛰어야 한다"고 했다. 그르노블(프랑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