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정현석 기자]변화는 우연치 않게 시작됐다.
삼성 내야수 김상수. 지난달 11일 대구 롯데전이었다. 마지막 타석 전까지 최악의 하루였다. 좀처럼 하지 않던 실책을 2개나 범했다. 톱타자로 4타석까지 출루가 하나도 없었다. 8회말 마지막 타석, 찬스가 걸렸다. 상대 투수는 롯데 우완 불펜 이인복.
"배팅이 무딘거 같아서 그 타석에 배트를 좀 짧게 쥐어봤어요. 그런데 몸쪽 공에 대처가 되는 느낌이더라고요. 몸쪽 투심이 좋은 이인복이었는데 짧게 잡고 안타를 쳤어요."
그 순간이 그에게는 커다란 국면 전환이었다. 야구를 시작한 이후 단 한번도 배트를 짧게 쥐어본 적이 없던 터. "유레카"를 외칠 만한 생각의 전환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20년 동안 길게만 잡고 쳤어요. 변화를 줘야겠다 생각하고 짧게 잡고 스탠스 바꿨는데 지금까지 잘 맞고 있는거 같아요."
효과 만점이다. 역사적인 '그날' 이후 김상수는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방망이 짧게 잡기 시작한 이후 25경기에서 0.348(89타수31안타), 4홈런, 14타점. 그 타석 이전까지 37경기에서는 0.236(148타수35안타) 1홈런, 14타점이었다.
기록만 봐도 변화의 효과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장타 생산이다. 짧게 잡기 전까지 장타는 2루타 7개와 1홈런. 짧게 잡은 이후에는 4홈런, 2루타 5개, 3루타 1개다. 장타가 줄기는 커녕 오히려 늘었다. 몸쪽 대처력 향상과 함께 배트 중심에 맞는 타구가 많이 나오면서 정확도와 장타력이 동시에 증가한 셈이다.
이 좋은 걸 왜 20년 동안이나 미뤄왔을까.
"그동안 주위에서 '짧게 잡고 쳐볼 생각이 없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배트 끝 노브에 그립이 닿지 않으면 헛도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배트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타자는 민감하다. 시즌 내내 고민 또 고민이다. 작은 변화에도 신경이 많이 쓰일 수 밖에 없다. 무언가 선뜻 바꾸는게 쉽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김상수는 과감하게 변화를 택했다. 지금까지 순항중이다. 워낙 감각적으로 뛰어난 선수인 만큼 좋은 흐름은 쭉 이어질 공산이 크다.
"생각을 한번 바꿔볼까 했던 변화가 지금까지 오르고 있네요. 짧은 컨택트 위주의 스윙이 좋은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쪽으로 간다면 계속 짧게 잡고 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톱타자가 선택한 20년 만의 변화. 성공적이다. 올시즌 2루수로의 성공적 포지션 전환에 이은 또 다른 국면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