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앞으로 한국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이전과 이후로 나뉠 거예요."
영화계 봉준호 감독을 향한 신드롬이 심상치 않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 황금종려상(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이유도 이유겠지만 무엇보다 그의 7번째 장편영화 '기생충'에 담은 봉준호 감독의 소신과 메시지 때문이다. 영화계 잘못된 관행이 봉준호 감독을 통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박사장(이선균)네 과외선생 면접을 보러 가면서 시작되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이 '마더'(09) 이후 10년 만의 국내 영화로 컴백한 작품이자 '옥자'(17) 이후 2년 만에 칸영화제 경쟁 부문으로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런 관심과 기대를 보답하듯 '기생충'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그 결과 한국영화 최초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 100년 역사상 최초, 그리고 초유의 사건과 파란을 일으켰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라는 평이 단지 말치레가 아니었음을 입증하듯 봉준호 감독은 탄탄한 스토리와 연출을 무기로 700만 관객을 사로잡았고 개봉 3주 차인 이번 주 800만 터치다운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사로잡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업계에서는 이런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이 다시금 재평가되는 중이다. 무엇보다 '기생충'에는 봉준호 감독의 세계관은 물론 영화를 대하는 자세와 연출에 대한 남다른 소신이 담겨있어 영화계 귀감이 되고 있다는 후문. 최근 '기생충'이 표준근로계약을 지키며 촬영된 영화로 한차례 관심을 받기도 했지만 일단 이 이슈는 '기생충'보다 먼저 표준근로계약을 지켜 만든 많은 작품이 있다는 소식이 덧붙여지며 한풀 꺾인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보다 더 관심을 갖는 대목으로 '기생충'의 크레딧이다.
일단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엔딩 크레딧에 투자자인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의 이름을 가장 먼저 올리지 않았다. 제작자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문양권 대표 다음으로 투자사의 크레딧을 올린 것. 이미경 부회장은 '아가씨'(16) '박쥐'(09·이상 박찬욱 감독) 등 해외 영화제에 진출한 영화제 작품들에 자신의 이름을 제작진 크레딧 중 가장 위에 올려왔다. 하지만 '기생충'만큼은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셈이다.
대부분 한국영화 크레딧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을 오가며 전반을 진두지휘한 제작자의 이름보다 제작비를 지원하는 투자·배급사의 이름을 먼저 올리는 고질적인 병폐가 이어졌는데 봉준호 감독은 이런 영화계 문제적 관행을 크레딧으로 정면 돌파한 것. 앞서 류승완 감독이 이런 영화계 병폐를 '군함도'(17)를 통해 깨부순 바 있다.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 오프닝 크레딧에서 '제작 외유내강, 제공/배급 CJ 엔터테인먼트'를 제외한 공동투자자, 투자지원 기관의 명단을 모두 없애며 일침을 가했다. 봉준호 감독 또한 '기생충' 오프닝 크레딧에서 공동투자자 및 투자지원 기관을 한데 모아 도장 낙인으로 이미지화해 흘려보냈다. 이는 마치 기생충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로 영화 제작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중이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통해 영화는 투자자의 자본으로 만든 자본주의의 산물이 아닌 감독, 제작자로 구성된 예술이라는 걸 다시 한번 보여줬다.
이뿐만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칸영화제 상영 때는 물론 국내 상영에서도 '기생충'에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새기지 않았다. 그저 '감독 봉준호'라는 심플한 타이틀을 걸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대하는 철학과 소신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는 중.
대게 해외영화제 초청작, 게다가 수상작일 경우 'OOO감독의 O번째 작품'이라는 낙인을 자랑처럼 새겨넣는다. 이는 한 편의 작품이 온전히 감독 자신의 창작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연출을 넘어 영화 전체의 제작을 도맡았을 때 쓸 수 있는 표현이다. 보통 홍상수를 비롯해 감독이 직접 제작에 나섰을 때 쓸 수 있는 타이틀이지만 한국영화계에서는 감독이 연출에만 관여했음에도 유명 영화제 초청이나 블록버스터 작품일 경우 자주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이런 관행을 타파, '감독 봉준호'라는 타이틀로 제작진의 노고를 예우해 눈길을 끈다.
영화계 한 제작자는 "'기생충'을 보고 충격을 받은 국내 감독들이 많다. 이미 봉준호 감독은 연출력만으로도 어나더 레벨(Another Level, 기존과 다른 수준)인 감독인데 '기생충'에 담긴 봉준호 감독의 소신과 동료를 향한 마음에 더욱 놀란 감독들이 많다. 영화계 이데올로기를 뒤흔드는 행보를 크레딧을 통해 보여줬다. 앞으로 '기생충'의 이전과 이후로 평가될 것"이라고 감탄했다.
또 다른 제작자는 "영화계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투자자 명단이 먼저인 크레딧'이다. 그간 한국영화는 창작자보다 늘 먼저 투자자를 소개해야 했는데 류승완 감독에 이어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통해 제대로 꼬집었다. 관객들에게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영화를 만들고 제작하는 제작진 사이에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늘 한(恨)이 맺힌 대목이다. 어떻게 보면 '기생충'은 갑(투자사)질에 상처받은 을(제작사)을 위로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계 혁명이며 제작자, 영화 관련 일을 하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왜 봉준호인지 알겠다'라며 극찬이 자자하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도 의미가 깊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이유로 '기생충'을 더욱 주목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인들의 용감한 소신이자 자랑이다"고 귀띔했다.
봉준호 감독은 제작자인 곽신애 대표와 20년 지기 배우 송강호의 손을 잡고 칸영화제 무대에 올라 다 함께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나눴다. 또 그는 수상 직후 무대에서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 작업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있어 가능했다. 홍경표 촬영감독 등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감사한다. 많은 예술가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지원해준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와 CJ 식구들에게 감사하다. 무엇보다 '기생충'은 위대한 배우들과 없었다면 찍을 수 없었던 영화다"고 자신을 제외한 '기생충'의 배우, 제작진에 공을 돌렸다. 그리고 폐막식 후 열린 공식 수상 포토콜에서도 봉준호 감독은 무릎을 꿇고 송강호를 향해 트로피를 건네는 모습을 연출하며 예우했다. 배우, 제작자, 스태프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감독이자 리더 봉준호. 전 세계에 퍼진 봉준호 감독의 신드롬은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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