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연기 포기하며 살았던 10년,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전 세계 영화인들의 극찬을 받으며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바른손이엔티 제작). 극중 전원백수 가족의 아내이자 엄마 충숙 역을 맡은 장혜진이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청룡영화상에서 신안감독상을 받은 영화 '우리들'(2016, 윤가은 감독)에서 딸을 사랑하지만 아이가 겪는 감정의 변화에는 무덤덤한 현실 엄마를 실감나게 연기하며 주목을 받은 장혜진. 그가 거장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통해 연기와 인생으로 쌓아올린 탄탄한 내공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가 연기하는 충숙은 전국체전 해머던지기 메달리스트 출신의 가정주부. 하는 일마다 안 풀리는 무능한 가장 때문에 아이들까지 고생이다 싶어 기택(송강호)를 구박하지만 애정 또한 넘쳐나는 박력 넘치는 그는 아들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자리를 소개 받아 오랜만의 고정 수입을 향한 기대에 부푼다.
이날 장혜진은 "사실 실감이 잘 안 된다. 아직도 꿈만 같다. 제가 실감 할 수 있었던 적이 없다. 언제쯤 현실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다 같이 기뻐해주고 즐겨주셔서 감사하다"며 '기생충'이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소감을 전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거장 봉준호 감독과 러브콜을 받게 된 장혜진은 캐스팅 과정에 대해 묻자 "감독님이 영화 '우리들'을 보시고 제가 너무 좋았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그 영화를 보고 연락을 주셨다. 정확히 감독님이 무슨 포인트가 좋았냐고 여쭤봤는데, '우리들'에서 한 순간에 표정이 일그러진 순간이 참 좋았다고 하더라. 그 표정을 캡쳐까지 해놓으셨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의 전작인 '살인의 추억'과 관련한 추억도 있다고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그는 "'살인의 추억'을 준비하실 때 저에게 연락이 왔었다. '너희 교수님이 쓰신 연극 '날 보러 와요'를 영화환 작품인데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제가 그때 연기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며 "감독님께 '휴가라도 내고 갈까요?'라고 했었는데 '생업을 포기하고 하실 정도는 아니다. 실패할 수도 있는데 내가 그런 거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다음에 더 큰 기회를 갖고 더 잘되면 연락 주겠다'고 하셨다. 그때 어떻게든 휴가를 내고 갔었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을 항상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제가 연기를 쉬다가 '밀양'으로 10년 만에 연기를 다시 하게 됐는데, 이창동 감독님이 이제 계속 연기를 하라고 용기를 주셨다"며 "봉 감독님은 '우리들'을 보시고 제게 다시 연락을 주신 거였는데 '살인의 추억'때 연락을 했던 배우가 저인지는 몰랐다고 하더라. 만나서 감독님이 새 작품을 준비중이시라며 (송)강호 선배님이 하신다고 말씀해주셨고 역할을 제안해주셨다"고 과정을 설명했다.장혜진은 충숙 캐릭터를 위해 15kg이나 몸무게를 증량했다. "살을 찌울 때는 하루에 여섯 끼를 먹었다. 운동은 하루에 40분씩 했다. 그걸 넘어가면 또 살이 빠진다고 하더라. 촬영을 마치고 살을 뺄 때는 하루 두 시간씩 운동을 했다. 살을 빼게 된 계기는 무릎이 너무 아파서였다. 영화를 보고는 제가 그렇게 살이 찐 줄은 몰랐다. 화면은 더 부어 보이지 않나. 그런데 감독님과 촬영 감독님은 정말 만족하셨다. 제 뱃살에 저도 놀랐다. 살을 찌울 땐 힘들긴 했지만 비주얼적으로 저도 만족스럽다. 그 살들이 너무 사랑스럽지 않나. 저는 그 살이 뽀얗고 흔들리는 게 사랑스럽더라.(웃음)"
이날 장혜진은 19살 연기를 시작했지만 영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로 첫 영화 촬영을 마친 후 자신의 연기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 연기를 그만두고 공백기를 가지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98년도에 연기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연기와 상관없는 일을 했다. 백화점에서 일하고 마트에서 판매도 했다. 판매왕도 했다. 마트에서 일을 너무 잘해서 다른 마트에서 스카웃도 됐고 백화점으로 진출을 하기도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이어 "연기 학원에서 마케팅, 홍보팀 팀장도 했었다. 그러다 결혼하고 애기 낳고 연기를 막 포기하고 살다가 이창동 감독님이 '밀양'으로 연락을 주셔서 다시 시작하게 됐다"며 "물론 연기를 쉰 기간이 있지만 오히려 그런 과정 때문에 저의 생활 연기가 나온 것 같다. 대학에서 연기를 할 때는 그저 잘 짜여진 연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저의 생활이, 특히 판매했을 때 경험이 제 연기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10년간의 공백기 동안에는 이선균 등 한예종 동기들이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되게 복잡했다"는 그는 "처음에는 영화도 안보고 드라마도 안보고 아무것도 안했다. 내가 실패한 것 같은 패배감이 밀려오더라"며 "그리고 연기를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누를 끼칠까봐 연락도 안했다. 그러다가 제 위치를 알게 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쉬었던 기간이 제 연기가 풍성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한 번 좋아했던 일은 정말 쉽지가 않다. 하지만 어떻게 돌아서 오든 계단으로 오든 모든 배우들은 자기가 올 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을 하고 고통을 겪으며 성장해야 하는 것 같다."
일련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기생충'을 통해 전성기를 맞이한 전혜진. 최근 '기생충'과 자신에 대한 댓글과 기사를 모두 찾아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전했다. 이에 기억에 남는 댓글 반응을 묻자 "땡땡이들을 아시냐"며 기자들에게 되물었다. 그는 "김숙이 제 친구다. 김숙씨가 하는 팟캐스트 '비밀보장'의 청취자들을 부르는 애칭이 '땡땡이'들인데, 저의 댓글에서 좋은 말을 달아주시는 분들 대부분이 땡땡이다. 숙이가 '비밀보장'에서 제 얘기를 엄청 했었다. 그걸 듣고 저를 응원해주시더라. 숙이 친구인 게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숙이가 영화를 보고 전화를 해서 '영화 최고다!'라고 말해줬다. 그리고는 '자중해라'라고 말해줬다. 제가 워낙에 성격이 업 되는 성격이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해줬다. 마인드 컨트롤해라고 말해줬다"고 말했다.남편과 아이들 등 가족에 대한 반응을 묻자 "요새 본인들이 더 신났다"고 말했다. "저 보다 제 주위 분들이 더 신나한다. 다른 분들이 더 신났다. 딸이 '엄마는 이제야 잘 된다'고 좋아한다. 그리고 저희 엄마도 주변 분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으신고 하더라."
한편,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관객의 호불호를 넘어 2006년 '괴물'에 이어 봉준호의 두 번째 1000만 관객 영화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승미 기자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