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을 앞둔 스프링캠프 훈련에서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31)는 모두의 주목을 받는 선수였다.
두산 베어스의 코칭스태프도, 전력분석팀도, 팀 동료들도, 취재진까지 페르난데스의 팀 적응 속도와 컨디션, 기량을 점검하느라 바빴다. 리그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타선을 갖추고 있는 두산이지만, 유독 외국인 타자 복이 없었다. 최근 뛰었던 타자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는 닉 에반스(2016~2017) 정도. 그나마도 수비 포지션이 애매해 활용폭이 높지 않았다. 특히 두산이 작년에 지미 파레디스와 스캇 반 슬라이크를 영입해 연거푸 실패하면서 페르난데스에 대한 평가는 더욱 냉정하고, 조심스럽게 내려졌다.
김태형 감독도 페르난데스에 대한 평가를 섣불리 하지 않았다. 초반부터 너무 큰 기대를 실어주면 자칫 무너졌을때 회복이 힘들 수도 있고, 실제로 스프링캠프에서 보여준 페르난데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페르난데스는 연습 타격 과정에서 김재환, 오재일 같은 두산의 장타자들의 스윙을 보고 힘이 잔뜩 들어가기도 했다. 김태형 감독이 직접 지적한 부분이다. 보통 미국식 패턴에 익숙한 외국인 타자들은 실전 감각을 천천히 끌어올린다. 하지만 연습 타격때 좋은 컨디션을 보이는 두산 타자들을 보고 페르난데스의 스윙이 커지면서 한때 밸런스가 흔들렸었다.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들은 페르난데스는 곧바로 재조정을 했고 한층 좋은 결과가 나왔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페르난데스는 두산 뿐만 아니라 리그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현재까지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 가운데 유일하게 4할 타율을 유지 중이다. 핵심은 갈 수록 더 빈 틈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 3월 23일 개막 이후 3월에 치른 8경기에서는 28타수 11안타 타율 3할9푼3리였지만, 4월에는 21일 KIA 타이거즈전까지 67타수 28안타로 타율 4할1푼8리를 기록하며 성적이 올랐다. 안타가 터지다보니 장타에 대한 자신감도 쑥쑥 상승했다. 4월 4일 KT 위즈전에서 시즌 첫 홈런을 터뜨렸던 페르난데스는 4월 7일 NC 다이노스전에서 2호, 17일 SK 와이번스전에서 3호, 21일 KIA전에서 4호를 쏘아올렸다. 홈런이 터지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페르난데스는 미국에서 장타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두산이 그를 영입할 때도 장타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지만, 막상 리그 투수들에 대한 적응을 마치고 나니 장타력이 터지고 있다. 현재까지 페르난데스의 장타율은 0.621에 해당한다. 최대 장점은 단연 선구안과 콘택트 실력. 보통 스윙이 큰 외국인 타자들은 낙차 큰 변화구에 헛스윙을 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페르난데스는 현재까지 빈 틈이 없다. 변화구에 잘 속지 않고, 볼을 골라내는 선구안도 탁월하다. 개막 이후 꾸준히 삼진보다 볼넷 비율이 훨씬 높아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자다. 볼을 던지면 골라내고, 스트라이크를 던지면 쳐버리니 4할 타율을 유지하는 셈이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