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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뚝심' 김경문 감독이 밝히는 "이승엽, 그때 그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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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감독과 베이징 올림픽이 영광.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국민타자' 이승엽이다.

대표팀 4번 타자 이승엽은 당시 최악의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일본과의 4강전이 열린 2008년 8월22일 우커송 야구장. 2-2로 팽팽하던 8회 1사 1루에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마운드에는 일본의 좌완 마무리 투수 이와세 히토키. 한방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전 타석까지 이승엽은 23타수3안타로 극심한 부진에 빠져 있었다. 한국 관중석에서 조차 야유가 터지던 상황. 11년이 흐른 지금도 김경문 감독은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관중석에서 '야, 3안타 친 X을 왜 4번에 계속 쓰냐'는 소리가 들렸어요. 승엽이가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이 친구도 후배들을 아껴가며 거기까지 왔는데 대회에서 잠깐 안 맞는다고 그런 야유를 보내는게 조금 서운하더라고요."

이와세는 이승엽의 타격감이 좋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거침 없이 볼카운트 1B2S까지 몰아붙였다. 큰 기대를 걸기 어려워 보이던 상황. 바깥쪽 공으로 승부하던 이와세는 허를 찔러 몸쪽 공을 찔러넣었다. 순간 이승엽의 배트가 돌았다. 얼핏 우익수 쪽에 뜬 타구 처럼 보였다. 방송 중계 캐스터도 차분하게 "우측에 떴습니다"라고 말했다.

벤치의 김경문 감독은 그 당시 그 상황을 어떻게 기억할까.

"승엽이가 감이 좋을 때는 (홈런임을) 바로 아는데 이날은 아니었어요. 벤치에서 뜬 타구를 보면 외야수 다리를 보거든요. 당시 우익수가 바로 이나바(현 일본 대표팀 사령탑) 감독이었어요. 계속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다리가 딱 멈춰 서는거에요. 승엽이 손목이 들어가면서 툭 하고 찍혀 맞은거지…."

타구가 담장을 넘는 순간 이승엽은 양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눈물을 흘릴 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였다. 이심전심 김경문 감독도 힘들었다.

"승엽이 그 홈런이 나오는 순간, 처음으로 답답하게 속에 있던 게 순간 툭 하고 떨어지는, 시원한 느낌이 들었어요. 제 야구인생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죠. 사실 '와'하고 환호하고 싶었어요. 감독이라 그러지도 못하고 참아야 했죠.(웃음)"

한번 지면 탈락하는 벼랑 끝 토너먼트. 미련할 정도로 이승엽 기용을 고집했던 김경문 감독은 '뚝심의 승부사'였다. 그런 믿음은 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사실 승엽이가 먼저 와서 한번 쉬었으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큰 경기에서 딱 2경기만 해주면 된다고…. 그런데 결국 승엽이는 3경기를 해줬어요. "

'이승엽 때문에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실제 김 감독은 힘들었다. 팬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 승장 인터뷰를 가서도 첫 질문은 '내일도 이승엽이 4번을 칩니까'였다.

"감독의 믿음은 그럴 때 필요한 겁니다. 만약 끝까지 안됐다면요? 제가 욕을 먹는다는 각오를 했죠. 가장 힘들었던 건 제가 아니라 승엽이였어요."

믿음을 가지고 운명을 거는 마지막 순간, 신은 화답한다. 김경문 감독에게 당시 이승엽은 어쩌면 모습을 바꾼 신의 현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