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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체육개혁, 진천선수촌 선수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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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꿈과 목표를 위해 땀흘립니다. 연금, 병역 혜택 받으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대한체육회 진천선수촌 혁신위원회는 11일 오후 7시 진천선수촌 챔피언하우스 대강당에서 한국체육지도자진흥협회 설립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전문 체육의 혁신 및 발전 방안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선수촌 혁신위원장인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주관한 자리로, 선수, 지도자 약 300명이 토론장을 가득 메워 체육계 개혁 방향에 대한 현장의 관심을 짐작케 했다. 홍석만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위원, 신아람 펜싱 국가대표, 이배영 역도대표팀 전 코치 등이 패널로 나선 가운데 현장의 선수, 지도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냈다.

김재현 한국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의 주제는 지난달 25일 정부가 발표한 체육계 혁신 대책이었다. 진천선수촌 선수와 지도자들은 소년체전 폐지, 합숙 훈련 폐지, 병역 및 연금혜택 축소, 선수촌 혁신 방향 등 4가지 주제에 대해 현장 엘리트 체육인의 생각을 조목조목 전했다.

유승민 IOC위원은 후배 선수들에게 "체육계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체육계 혁신을 위해서는 우리 체육인 스스로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고 독려했다.

여자레슬링 국가대표 김영주는 경기력 향상 연금 폐지 정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연금을 받는 선수가 아니다.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렸지만 연금 혜택이 없어서 미래가 두렵다. 저희 여자레슬링 선수 중 단 1명도 연금을 받지 못한다. 국가대표 중 극소수 선수들만 혜택을 받는다"며 냉정한 현실을 짚었다. "나는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땄다. 지인들은 묻는다. '연금 얼마 받아?'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국민들은 아시안게임 메달을 따면 당연히 연금을 받는 줄 알지만 한달 35만원의 연금을 받으려면 아시안게임 동메달 20개를 따야 한다"고 말했다. "4년에 한번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 20개를 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80년이다. 쉽게 받을 수 없는 연금이기 때문에 연금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확대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육교사 출신의 김우영 역도 지도자는 학생선수들의 합숙을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을 지적했다. "역도 지도자가 되기 전에 체육교사로 기숙사가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했다.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의 조건은 첫째, 원거리 학생, 둘째,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학업우수 학생이었다. 서울대, 소위 스카이대에 학생을 보내려는 자사고에서는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왜 학생선수들의 기숙사만을 '합숙'이라고 칭하며 문제 삼는가. 우리가 체육을 선택한 것은 결코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다. 신체 기능이 뛰어나고 재능이 있어서 체육을 선택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런던올림픽 펜싱 은메달리스트 신아람은 선수 입장에서 합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20년 가까이 선수생활을 하면서 합숙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합숙을 통해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고, 꾸준한 컨디션 관리로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여자선수들이 늦은 시간까지 훈련에 매진해도 안전 귀가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고 했다.

복싱 세계 챔피언 출신 이옥성 전 대표팀 코치는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아시안게임,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2010년 서른에 반강제로 군대를 가면서 자연적으로 은퇴가 됐다. 자식과 아내가 있는 상황에서 45만원의 체육연금은 큰 힘이 됐다. 시도체육회에서 100만원 지원금 받고, 연금 45만원 보태서 세 식구가 살았다. 만약 그 돈이 없었다면 파산했을 것이다. 연금은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그런 의미다. 정부에 무조건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선수들은 27~28세, 최고의 기량일 때 군대를 가야 한다. 안가겠다는 게 아니라 그 기간을 유예해서 원없이 운동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달 28일 선수촌 지도자들이 중심이 된 가칭 선수촌 권익위원회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생생한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사격의 B선수는 "(성폭력에 대해)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낸 국가대표 선수가 원한 방향이 지금 정부가 생각하는 엘리트 체육의 폐지일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처리하게 되면 체육계뿐 아니라 모든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은 솔직한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이다. 무조건 폐지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부분에 대한 올바른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레슬링의 A선수는 "선수들이 꿈과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정부의 급진적인 대책은 선수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촌 환경 개선과 혁신을 위한 선수들의 바람도 쏟아졌다. 태릉에서 진천으로 선수촌을 이전한 후 선수들의 학습환경은 악화됐다. 공부하는 선수 정책에 맞는 시스템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매일 서울과 진천을 오가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아티스틱스위밍 선수들은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며 꿈을 위해 노력해왔는데 무조건 페지는 옳지 않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간에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학교를 없애야 하나"라고 반문하면서 "학생선수들이 공부와 운동을 효과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지원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국가대표 선수 대부분이 미리 나눠준 주관식 설문지를 빼곡히 메웠다. "저희들은 연금, 병역 혜택 바라보고 운동하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에 열심히 올인해서 노력할 때, 열심히 달려가는 길 위에서 주어지는 열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에 비추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 빛나는 우리 선수들에게 단비를 내려주지는 못할 망정 왜 자꾸 역방향으로 후퇴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끼리 토론회 하는 것보다 정부, 문화체육관광부 분들을 모셔서 이런 사안들을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이 우리의 절실함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12일 문체부 관계자는 "11일 첫 회의를 가진 스포츠혁신위원회 분과위원들이 직접 진천선수촌을 찾아 국가대표 선수, 지도자 등 현장의 목소리를 폭넓게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