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아랍에미리트)=박찬준 기자]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해보자. 이승우(헬라스 베로나)가 꼭 뛰어야 하나.
이승우 물병차기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16일(이하 한국시각)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알 나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중국과의 2019년 UAE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2대0 완승을 거뒀다. 1, 2차전에서 부진했던 한국은 '에이스' 손흥민(토트넘)의 가세로 확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3연승에 성공한 한국은 승점 9로 조1위로 16강행에 성공했다.
모든게 완벽했던 경기, 그러나 경기 막판 뜻밖의 장소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이 나왔다. 그라운드가 아닌 한국 벤치 쪽에서였다. 이승우(헬라스 베로나)였다.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한 이승우는 교체 준비를 위해 열심히 몸을 풀고 있었다. 후반 35분 벤치에서 사인이 들어왔다. 교체가 아닌 그만 몸을 풀고 들어오라던 메시지였다. 벤투 감독의 마지막 교체카드는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었다. 이승우는 벤치로 돌아오며 물병과 수건을 걷어찼다. 벤치에서는 정강이 보호대를 집어던졌다. 자신을 투입시키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정승현(가시마)이 곁에서다독 거렸지만, 이승우는 끝까지 화를 풀지 못했다.
경기 후 이승우의 행동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경솔한 행동이었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내고 있다. 이 논쟁의 본질에는 좀처럼 이승우를 활용하지 않는 벤투 감독의 결정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이 숨어 있다. 사실 이 행동 전부터 이승우의 출전 여부는 큰 관심사였다. 매 경기 이와 관련한 수많은 기사가 쏟아지고, 댓글도 폭발했다.
당초 본선 엔트리에서 제외된 이승우는 부상으로 낙마한 나상호(광주)의 대체선수로 아시안컵 무대를 밟았다. 이승우는 사실 벤투호에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지난해 9월과 10월 A매치 때는 소집됐지만, 벤투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9월 코스타리카전 교체 출전이 전부였다. 10분 정도 밖에 뛰지 못했다. 11월 호주 원정에는 아예 명단에서 제외됐다. 아시안컵 엔트리에서도 빠졌다. 벤투 감독은 "이승우는 소속팀에서 많은 출전을 하지 못하고 있고, 그의 포지션에 좋은 자원도 많다"고 했다. 애초부터 이승우는 이번 아시안컵을 준비하는 벤투 감독의 구상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벤투 감독은 왜 대체멤버로 이승우를 발탁했을까. 실제 벤투호에는 아부다비까지 함께 넘어와 훈련하던 '예비멤버' 이진현(광주)이 있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이진현 대신 예비 명단에도 없던 이승우를 택했다. 포지션 때문이었다. 벤투 감독은 "나상호는 윙어와 섀도 스트라이커로 뛸 수 있다. 이승우도 그 자리에서 뛸 수 있다. 또 이승우가 연말까지 소속팀에서 계속 뛰었고, 일주일 정도 휴식을 취했기에 감각적인 측면에서 택했다"고 했다.
사실 숨겨진 이유도 있었다. 이번 대회를 중계하는 신태용 해설위원은 "이승우 외에 대안이 없었다. 아쉽게 명단에서 제외된 문선민(인천) 김승대(포항) 등도 충분히 고려될만한 옵션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시즌이 끝났다. 그나마 지금 대표팀에 있는 동아시아 리거는 울산전지훈련과 중동 현지 훈련으로 감각을 유지하고 있지만, 다른 선수들은 모두 휴가를 갔을거다. 그런 몸을 끌어올리기에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유럽이나 중동 리거 중 나상호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선수는 이승우 뿐이었다.
결국 이승우의 대표팀 내 입지는 백업멤버였던 나상호의 대체멤버다. 냉정히 말해 2선 자원 중 가장 밀려 있다. 물론 이승우는 여전히 기대를 품게 하는 선수다. 연령별 대표팀부터 그랬다. 그는 언제나 투입되면 차이를 만들어냈다. 지난 U-16 아시아 챔피언십 일본전,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전,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일본전에서 만든 골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팬들이, 일부 미디어가 그의 출전을 지지 하는 이유다. 답답한 경기력을 보였던 1, 2차전에서 분명 뛸 여지도 있었다. 당시 한국에 필요한 것은 세밀함과 마무리였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끝까지 이승우를 외면했다. 벤투 감독의 게임플랜에 이승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밖에서 보기에, '왜 이승우를 넣지 않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넣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도 악의적으로 투입을 하지 않는 감독은 없다. 한 경기에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대표팀 감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감독은 결정을 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자리다. 그래서 더 냉정하다. 벤투 감독은 9, 10월 A매치를 준비하며 이승우를 지켜봤다. 벤투 감독이 바르셀로나에서 뛰었고, 이탈리아에서 뛰는 이승우의 이력을 모를리 없다. 벤투 감독은 부임 전 연령별 대표의 경기 비디오를 모두 봤다. 그랬기에 오히려 더 주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은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인 보다는 팀을 강조하는 벤투 감독 입장에서 수비력이 떨어지고, 전술에 따라 편차가 큰 이승우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이승우를 뽑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유럽에서 뛴다고, 기술이 좋다고, 인기가 많다고, 무조건 경기에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축구는 11명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것은 11명의 선수들이지만, 승리를 만드는 것은 23명 전체의 몫이다. 감독은 플랜B, 플랜C도 준비해야 한다. 이승우가 14명(교체멤버 3명 포함)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서 쓸모 없는 선수가 아니다. 오히려 벤치 멤버의 역할이 더 중요할때도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후 거스 히딩크 감독이 가장 고마워한 선수는 주전으로 뛸 수있는 실력임에도 벤치에서 제 몫을 해준 김병지였다.
이승우는 이제 21세다. 경기에 뛰지 못하면 화가 날수도 있다. 언제나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승우다.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치기 어린 행동으로 이해하기에는, '원팀'을 깰 수 있는 경솔한 행동이었다. 그가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이번 행동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꼭 뛰지 않아도, 벤치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승우의 재능은 특별하지만 그 역시 23명 중 하나일 뿐이다.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