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타고투저'의 시대였다.
투수들은 괴로웠다. 평균자책점이 치솟았다. 반면 타자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홈런과 장타율이 늘었다. 지난해 10개 팀 홈런(평균 176개)과 장타율(평균 0.450)은 최근 5년간 최고치를 경신했을 정도. 2017년 홈런(평균 155개)과 2014년 장타율(평균 0.443)을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홈런과 장타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기동력을 활용한 야구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타자들이 알아서 타점을 올려주기 때문에 굳이 도루실패에 대한 위험성을 안고 도루를 시도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해 '타고투저' 완화를 위해 공인구 반발력을 떨어뜨렸다. 기존 0.4134∼0.4374였던 반발계수를 미국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와 비슷한 수준(0.4034∼0.4234)으로 낮춘다. 물론 반발력을 낮춘다고 해서 잘 치던 타자들의 기량이 한 순간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비거리가 줄고 또 다른 효과도 노려볼 수 있다.
그 중 한 가지가 '작전야구'다. 주자가 득점권에 있을 때 타자는 당연히 호쾌하게 방망이를 돌려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일 욕심을 가진다. 그러나 반발력에 의해 장타가 많이 생산되지 않을 경우 최대한 주자가 스스로 뛰어서 득점권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감독들의 지시에 따라 번트가 늘어날 수 있고, 진루의 소중함이 더 부각될 수 있다. '작전야구', 즉 '감독들의 지략대결'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야구 관계자들은 "일각에선 공인구 반발력을 낮추는 것을 가볍게 보는 시각들이 있다. 반발력을 줄여도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냐는 논리다. 그러나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다. 도루시도가 많아질 수 있고, 자연스럽게 포수의 도루저지율이 중요해지고, 투수의 심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안방마님' 포수 어깨도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도둑(주자)을 잡는다는 표현으로 포수를 '포도대장'으로 불렀던 시절도 있을 만큼 도루저지율이 더 중요해졌다. 그런 면에서 NC, 한화, KT가 웃을 수 있다. 지난해 100경기 이상 출전한 주전 포수들로 압축해 도루저지율을 보면 '125억원 사나이' 양의지(32)가 0.378로 가장 좋은 기록을 보이고 있다. 도루저지도 28차례로 가장 많다. 무엇보다 정상급 타격 능력도 갖추고 있다. 지난해까지 양의지를 곁에서 지켜봤던 이강철 KT 감독은 "양의지가 타격에서 팀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NC는 양의지 동갑내기 정범모도 버티고 있다. 정범모 역시 3할대(0.328) 도루저지율을 보였다.
한화 최재훈(30)도 주목받고 있다. 11년 만에 한화의 가을야구를 이끈 주인공이다. 25차례 도루를 저지했고 도루저지율은 0.325다. 최재훈은 KIA-NC-롯데전에 유독 강한 모습을 보였다.
KT 장성우는 도루저지율이 0.247밖에 되지 않지만 도루저지를 21차례나 기록했고, 단독 스틸을 59차례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베테랑 강민호(삼성)보다 도루저지와 단독스틸 방어면에서 앞섰다.
KIA 김민식은 팀 투수 안정화를 시킨 선수다. KIA가 그 동안 도루를 많이 허용해 투수들이 많이 쫓겼지만 2017년 김민식이 SK에서 트레이드로 온 뒤 시즌 초반 몇 차례 도루를 저지하면서 심리적 안정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타격이 약한 것이 다소 흠이다.
포수의 도루저지는 투수의 퀵모션과 연계성이 높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투수가 빠른 동작으로 공을 던져야 포수가 도루를 저지하기 위해 송구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때문에 구단 스카우트팀이 설정한 외국인 투수 영입기준에 퀵모션 등도 고려된 경우가 많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