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놈될'. 젊은 층에서 흔히 쓰는 신조어로 '될 놈은 뭘 해도 된다'의 줄임말이다. 행운이 늘 끊이지 않는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이 표현에 딱 들어맞는 케이스가 있다. 바로 여자 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과 위성우 감독이다. 지난 8일 열린 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겨우 4.8%의 희박한 추첨 확률을 뚫고 지명 1순위를 따내며 '특급 신인' 박지현을 품에 안았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6연속 통합 우승으로 여자 프로농구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팀이다. 이번 2018~2019시즌에도 1위를 기록 중이라 '통합 7연패' 가능성이 크다. 이런 우리은행에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라고 까지 불리는 박지현이 가세했다. 마치 판타지 게임에서나 볼 법한 상황이다. 가뜩이나 다른 팀과의 전력 차이가 큰데, 앞으로 이 차이가 얼마나 더 벌어질 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박지현의 우리은행 합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은행의 독주 현상이 더욱 심해져 여자 프로농구 발전에 마이너스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게 이런 시각의 핵심이다. 일견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본질적으로 '남 탓 하기'와 다르지 않다. 상대의 강함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의 경쟁력을 키우려 하지 않고, 되려 상대가 지나치게 강하다며 불평만 쏟아내는 것이다. 우리은행이 지난 6시즌 동안 리그 1위를 질주하는 동안 다른 구단들이 어떤 행보를 보였는 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전력을 키우고 전술을 다양화해서 진정한 강팀이 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해 왔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똑같이 주어진 환경과 시간 속에서 우리은행과 타 구단들의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져 갔고, 이 과정에서 WKBL의 수준은 전반적으로 퇴화돼 온 게 사실이다. 리그 평균득점과 3점슛 성공률, 2점슛 성공률 그리고 프리드로 성공률 등의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다. 수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수치가 떨어지고 있다. 우리은행이나 KB스타즈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프로'의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기량이 퇴보돼 있다. 노마크 야투가 림에 닿지도 못한 채 빗나가거나 단독 레이업 실패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박지현이 다른 팀에 갔다고 해서 우리은행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까. 또 이로 인해 WKBL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될 수 있을까.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 또한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우선 박지현이 아무리 잠재력이 좋다고 해도 프로 신인일 뿐이다. 이런 선수 한명이 가세했다고 '대항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난센스다. 박지현도 어설프게 다른 구단에 가서 기량이 정체되느니 차라리 우리은행의 '악명높은' 트레이닝 시스템에서 제대로 크는 게 낫다. 어쩌면 차라리 이 편이 한국 여자농구 발전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국 박지현의 우리은행 입단은 WKBL리그 전체에 울리는 경종이다. 다른 구단이 진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지도자나 선수들도 프로의식을 제대로 자각할 필요가 있다. 팀을 근본부터 갈아 엎을 각오로 전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은행의 '통합 10연패'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불평할 때가 아니라 투쟁심을 이끌어내야 할 때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