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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러프의 가치, 보이는 기록이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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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3년째를 맞는 다린 러프(33). 어느덧 팬들의 사랑을 받는 토종 선수 대우를 받고 있다. 지난해 말 삼성과의 재계약 협상이 길어질 때 삼성 팬들은 입을 모아 러프의 재계약을 희망했다. 실력과 인성을 동시에 갖춘 선수이기 때문이다. 야구를 잘했지만 일탈행위를 일삼거나 리그를 무시하고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던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과 러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선 성실하다. 팀과 팬을 각별히 여긴다. 자만하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땅볼 타구에도 1루까지 전력으로 질주하는 선수가 러프다. 중요한 순간 큰 스윙 대신 가볍게 적시타를 뽑아낼 줄 아는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난 클러치 히터. 토종 스타 못지 않는 인기로 삼성팬들로부터 'I Ruf you'로 불리며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한 선수다.

러프의 가치는 자세히 들여다 볼 수록 빛난다. 보이는 기록도 훌륭하지만 숨은 기록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더욱 대단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러프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가치 있는 타자다. 꾸준히 약점을 제거해왔다. 기록이 입증한다. 얼핏 보면 2017년과 2018년 기록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중요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러프는 데뷔 첫해였던 2017년 4월에 극도로 부진했다. 1할대 타율에 그치며 개막 3주만에 엔트리 말소의 수모까지 겪었다. BBark 강기웅 코치의 조언으로 레그킥을 통한 회전력 강화와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한국 야구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슬로우 스타터로 불렸던 데뷔 첫해. 2년 차였던 지난해는 어땠을까. 봄의 악몽은 더 이상 없었다. 시즌이 시작되기 무섭게 펄펄 날았다. 3,4월 타율 3할2푼8리에 8홈런, 25타점으로 집단 부진에 빠져있던 삼성 타선의 중심을 잡았다. 그는 시즌 내내 큰 기복 없이 꾸준하게 활약하며 타선을 이끌었다.

더 무서운 사실은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약점을 극복했다는 점이다. 러프는 미국 시절 좌투수 킬러로 통했다. 하지만 국내 데뷔 첫해 왼손투수에게 0.256(168타수43안타)의 타율(우투수 0.333, 언더투수 0.404)로 가장 약했다. 하지만 1년 뒤인 2018 시즌 이 통계는 완전히 바뀐다. 왼손투수를 상대로 0.368(125타수46안타)의 타율(우투수 0.317, 언더투수 0.319)을 기록하며 좌완 킬러로 컴백했다.

변화는 좌투수가 먼쪽에서 던지는 아웃코스볼의 대처에 있었다. 데뷔 첫해 러프는 미국과 살짝 다른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 기준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다. 좌투수의 아웃코스 공에 주심 손이 올라가자 툭 갖다 맞히기에 급급한 타격을 했다. 힘없이 밀어치는 타구가 나왔다. 하지만 러프는 이 약점을 1년만에 극복했다. 상대적으로 긴 리치를 이용, 아웃코스를 제 스윙으로 강하게 당겨치기 시작했다. 좌투수 상대로 왼쪽으로 당겨친 안타가 2017년 25개에서 2018년 31개로 늘었다. 좌투수 상대 타수가 43차례나 줄었지만 좌측 안타수는 오히려 6개가 늘었다. 좌투수 상대 홈런도 7개에서 10개로 늘었다. 이로써 러프는 좌-우-언더 유형과 관계 없이 자신있게 자기 스윙을 할 수 있는 완벽한 타자로 진화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러프의 진화는 에이스급 투수 상대 성적의 향상이다. 러프는 데뷔 첫해인 2017년 3점대 방어율 투수를 상대로 0.271의 타율(144타수39안타)과 6홈런을 기록했다. 4점대와 5점대 방어율 투수를 상대로는 각각 0.333의 타율과 12홈런씩을 기록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8년에는 역주행 기록이 나왔다. 2점대 방어율 투수를 상대로 0.481(27타수13안타) 3홈런, 3점대를 상대로 0.366(82타수30안타) 7홈런, 4점대 방어율 투수를 상대로 0.287(174타수50안타) 6홈런을 기록했다. 에이스급 투수에 상대적으로 강했다는 뜻이다. 실제 러프는 올시즌 SK 켈리(이하 상대타율 0.364), 산체스(0.400), 김광현(0.750), 김태훈(0.800), 두산 린드블롬(0.400), 이용찬(0.667), 넥센 해커(0.667), 최원태(0.400), 김상수(0.500), 한화 휠러(0.500) 헤일(0.333), 김재영(0.714), KIA 헥터(0.750), KT 피어밴드(0.455), LG 정찬헌(0.500), 윌슨(0.444), 차우찬(0.375), 소사(0.333), NC 베렛(0.333), 이민호(0.333), 롯데 구승민(0.667), 김원중(0.500), 오현택(0.500), 노경은(0.364), 레일리(0.333) 등 상대팀 주축 투수 상당수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올시즌 삼성은 4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고 있다. 확률도 지난 2년보다 높다. 에이스급 투수들을 집중 상대할 데뷔 첫 가을잔치에서 러프의 맹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