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전력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필리핀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6위다. 한국은 필리핀과 7번 만나 모두 이겼다. 7경기에서 무려 36골을 넣었을 정도로 일방적인 승리였다. 마지막 대결이 무려 39년 전이라고 하나, 이후 상황을 살펴보더라도 한국과 필리핀의 격차는 제법 크다. 그래도 승부에 절대는 없다. 변수를 주의하지 않으면 의외로 고전할 수도 있다.
가장 큰 변수는 우리의 컨디션이다. 벤투호는 이번 대회 우승을 목표로 했다. 우승을 위한 가장 큰 고민은 컨디션 조절이다. 유럽파가 시즌이 한창인데 반해, K리거, J리거 등 동아시아에서 뛰는 선수들은 시즌을 마쳤다. 컨디션이 균일하지 않다. 벤투 감독도 "선수들 전체의 컨디션을 고르게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벤투호는 이를 위해 피지컬 코치를 단기로 합류시켜, 컨디션 조절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체력 훈련도 병행하고 있다.
이 훈련의 성과는 조별리그 초반보다는 토너먼트 이후에 나온다. 초반 보다는 뒤로 갈 수록 컨디션이 좋아진다. 사실 지난 사우디와의 최종 평가전에서 보인 아쉬운 경기력 역시 '변형 스리백'이라는 전술 변화에 따른 혼란 보다는 체력 훈련에 따른 컨디션 저하가 컸다. 필리핀과 1차전 역시 베스트 컨디션으로 임하기는 힘들다. 몸상태가 100%가 아닌만큼 과정 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중동의 잔디도 간과하기 어려운 변수다. 중동은 '떡잔디'로 악명이 높다. 중동의 잔디는 푹신하면서 짧고, 엉켜있다. 우리가 중동에서 항상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잔디다. 스터드가 깊숙히 박혀 다음 동작이 어려운데다, 공이 굴러가는 속도도 빠르지 않다. 아시아에서는 기술 수준이 높은 한국 입장에서는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지난 사우디전에서도 잔디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었다. 물론 사우디전이 열린 바니야스 스타디움은 아시안컵 개최 경기장은 아니다. 본 경기장 상황은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승패는 항상 작은 차이에서 갈린다. 잔디 적응이 중요한 이유다.
마지막 변수는 '에릭손 효과'다. 필리핀은 '명장'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에릭손 감독은 '축구종가' 잉글랜드 대표팀의 첫 외국인 감독으로 유명하다. 최근 하향세지만 라치오, 맨시티 등을 이끌며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에릭손 감독은 안정적인 팀을 만드는데 능하다. 최근 필리핀은 상승세다. 이중 국적을 적극 활용해,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을 대거 합류시켰고, 에릭센 감독까지 데려왔다. 서서히 성과가 나오고 있다. 우승을 차지한 베트남에 온 신경이 집중됐지만, 필리핀도 스즈키컵 4강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산전수전을 겪은 에릭손 감독의 한 수는 벤투호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방심은 없다. 벤투 감독은 4일과 5일 훈련에 앞서 선수들과 함께 이틀 연속 필리핀 전력분석 미팅을 했다. 일찌감차 마련한 필리핀의 경기 영상을 토대로 상대의 장단점과 포지션별 대처 요령을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벤투호는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필리핀전에 나선다는 각오다.
두바이(아랍에미리트)=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