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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이형 은퇴 앞당기겠다"던 황인범, 농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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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범(대전)은 '기성용 바라기'다.

기성용(뉴캐슬)을 롤모델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지난 9월 처음으로 A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황인범은 기성용과 함께 하며 그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졌다. "벤치에서 지켜봐도 놀랍다. 킥 한번으로 상황을 바꾼다. 대단한 선배다." A매치 데뷔골을 넣었던 10월 파나마전에서도 기성용을 언급했다. 기성용과 함께 중원에 포진한 황인범은 "성용이형에게 의지했다. 내가 잘 했다면 형이 더 편하게 했을텐데 그러질 못했다. 나를 믿어 주셔서 감사했다. 더 노력해서 성용이형의 은퇴를 앞당기도록 성장하겠다"고 했다.

그냥 농담만은 아니었다. 황인범은 조금씩 기성용의 자리를 가져가고 있다. 황인범은 17일(한국시각) 호주 브리즈번 선코프스타디움에서 열린 호주와의 평가전에서 선발 출전해, 맹활약을 펼쳤다.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과 함께 더블볼란치(두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 황인범은 후반 추가시간 교체아웃될때까지 기성용의 공백을 성공적으로 메웠다. 기성용은 파울루 벤투 감독의 배려로 이번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았다.

사실 이번 호주 원정의 가장 중요한 실험 포인트 중 하나는 기성용의 대체자였다. 벤투 감독의 신뢰 속 대표팀 은퇴 의사를 접은 기성용은 그야말로 벤투호의 핵심 자원이었다. 빌드업을 중시하는 벤투 감독은 기성용의 패싱력과 키핑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기성용은 지난 4번의 평가전에 모두 나섰다. 그런 기성용이 호주 원정길에 제외된만큼, 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벤투 감독의 해법에 관심이 집중됐다.

벤투 감독의 선택은 황인범이었다. 황인범은 벤투 감독의 황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안게임 이후 처음으로 대표팀에 발탁된데 이어 점점 영역을 넓히고 있다. 황인범은 이제 대표팀의 확실한 3선 자원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사실 황인범은 소속팀과 아시안게임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됐다. 벤투 감독은 그 보다 한단계 아래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황인범을 기용하고 있다. 기성용과는 다른 황인범만의 전개력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기성용이 스케일이 큰 선수라면, 황인범은 조금 더 아기자기하다. 기성용이 롱패스 한방으로 부위기를 바꾼다면, 황인범은 짧은 패스와 재치있는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든다.

호주전에서도 황인범은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체격이 큰 호주 선수들을 상대로 특유의 기술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특히 날카로운 킥이 돋보였는데, 후반 15분 자신이 얻어낸 프리킥을 직접 차 상대의 골문을 위협한 장면은 이날 황인범 활약의 하이라이트였다. 물론 보완할 점도 많았다. 잔패스 미스가 많았고, 수비시 위치선정도 아쉬웠다. 넓은 움직임과 적극적인 동작으로 커버하려 했지만, 전반 중반까지 상대에 밀린 것은 수비와 미드필드 사이에서 상대 공격을 1차 저지해야 하는 황인범이 제 위치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황인범은 이날 자신의 몫을 분명히 했다. 우상의 자리에서, 에이스 손흥민의 등번호(7번)를 달고 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지만, 황인범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였다. 기성용과는 다른 스타일의 경기를 펼치며, 벤투호에 또 다른 옵션을 안겼다. 자신감도 더했다. 황인범은 "파나마전 당시 선발인 것을 알고 긴장도 되고 잠도 안 와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이번에는 몸이 굉장히 좋았다"며 "파나마전 때는 조금만 뛰어도 긴장해서 안 좋았는데 오늘은 컨디션도 좋았다. 그래도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내년 1월 아시안컵에 도전하는 황인범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호주전이었다. 황인범은 우상 기성용을 넘어, 조금씩 자신의 시대를 쓰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