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베트남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4강전.
승부의 포인트는 '학범슨' 김학범 한국 감독과 '쌀딩크' 박항서 베트남 감독의 지략대결이었다. 김 감독은 코치를 거쳐 2005년 처음 성남 일화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후 중국 허난 젠예, 강원FC, 성남, 광주FC 등을 고르게 거쳤다. 뛰어난 지략이 명장 알렉스 퍼거슨을 닮았다고 해 '학범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성남 시절 K리그1 우승, FA컵 우승 등을 모두 경험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수석 코치로 '히딩크의 기적'을 함께한 박 감독은 베트남 지휘봉을 잡으며 축구 인생의 새 전기를 맞았다. 201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22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베트남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베트남을 사상 첫 4강으로 이끌었다. '박항서 매직'으로 불리는 용병술이 꽃을 피웠다.
한 살 터울의 두 감독은 서로를 너무나 잘안다. 김 감독과 박 감독은 2006~2008년, 그리고 2012년 한 리그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그래서 껄끄러운 경기였다. 서로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데다, 상황도 묘했다. 한 수 위의 한국은 '이겨야 본전'이다. 김 감독 입장에서 이번 대회 5경기 5전승, 8골-무실점을 기록한 베트남의 상승세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박 감독 역시 고국을 상대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한국의 막강 공격진은 지금까지 상대한 팀들과 차원이 달랐다.
'아시안게임 2연패'와 '사상 첫 결승 진출'의 문턱에선 김 감독과 박 감독은 승부수를 띄웠다.
김 감독은 지난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4대3)과 비교해 대단히 공격적인 라인업을 꾸렸다. 황의조(감바 오사카)를 원톱에 두고 이승우(헬라스 베로나)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잘츠부르크) 세 유럽파를 동시에 내세웠다. 3선 역시 공격적인 김정민(리퍼링) 이진현(포항)을 기용했다. 물론 장윤호(전북)의 부상, 이승모(광주)의 부진 등이 있었지만, '공격'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앞세워 승부를 걸겠다는 뜻이었다.
박 감독은 인천, 강원에서 뛰며 한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쯔엉을 선발 라인업에 올렸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한국의 중원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공격의 무게는 오른쪽에 실었다. 수비에 약점을 갖고 있는 이승우 김진야(인천)의 왼쪽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양 감독의 승부수. 승자는 김학범 감독이었다. 의도가 멋지게 맞아 떨어졌다. 수비력이 좋고, 볼간수를 잘하는 베트남을 상대로 느린 템포로 맞서면 고전할 수 밖에 없다. 김 감독은 앞선을 과감히 위로 올렸다. 강한 압박으로 베트남 수비를 흔들었다. 이어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베트남을 몰아붙였다. 황의조 손흥민 이승우 황희찬의 돌파, 스피드는 차원이 달랐다. 유기적인 포지션 체인지도 돋보였다. 전반 7분 이승우의 결승골, 전반 27분 황의조의 쐐기골 모두 이같은 움직임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뒷문도 소홀히 두지 않았다. 포백의 라인을 뒤로 내려 상대의 역습에 대비했고, 좌우 윙백의 공격도 자제시켰다. 부상에서 돌아온 조현우(대구)를 복귀시켜 수비진 전체에 심리적인 안정감도 줬다.
반면 박 감독의 승부수는 통하지 않았다. 쯔엉은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됐다. 전반 이른 시간 선제골을 내주며 베트남 특유의 '선수비 후역습' 전략을 펴지 못했다. 0-2로 뒤진 베트남은 후반 공격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베트남은 공격적인 운영에 능한 팀이 아니었다. 오히려 라인을 올리며, 수비가 헐거워졌다. 한국은 그 공간을 적절하게 공략하며 추가골을 만들어냈다. 후반 10분 이승우의 골도 한국의 역습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박항서 매직이 완전히 빛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쯔엉 대신 교체로 넣은 부엉이 후반 25분 멋진 프리킥으로 한골을 만회했다. 승부수의 실패를 인정하고 빠른 변화를 택한 박 감독의 용병술을 보여준 인상적인 골이었다.
결국 한국이 3대1 완승으로 결승에 올랐다. 머리싸움에서 이긴 김 감독도 함께 웃었다.
보고르(인도네시아)=선수민 기자 sunso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