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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리포트] '캡틴' 손흥민은 어떻게 '우리 형'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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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26·토트넘)이 달라졌다.

주장 완장의 무게를 견디며 그라운드 안팎에서 솔선수범하며 팀을 이끌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변화된 모습이 도드라진다. 자기 플레이에 집중하던 그는 어느덧 나보다는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한국식 조직문화에 썩 익숙하지 않은 그는 어떻게 하루 아침에 '우리 형'이 됐을까.

손흥민은 국내 선수들과 DNA가 다른 선수다. 국내 학원 축구팀의 조직 문화 속에서 성장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유럽으로 건너가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일찌감치 재능을 꽃 피우며, 독일 함부르크, 레버쿠젠을 거쳐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선 그 기량이 만개했다. '톱 클래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실력만 얘기하는 건 아니다. 손흥민은 흐르는 세월과 함께 성숙해지고 있다. 그저 부담 없이 '자신만의 축구'를 하던 가까운 과거와도 확 달라졌다.

지난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평가전에선 동료를 질책하는 듯한 손흥민의 표정이 논란을 불렀다. 이후 대표팀 동료이자, 선배인 정우영과의 불화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큰 문제 없이 일단락됐지만, 강한 승부욕으로 종종 아쉬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이 손흥민은 조금씩 성장했다. 월드컵 본 무대에선 실수로 괴로워하는 동료 김민우를 다독였다. 독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선 부상을 당한 기성용 대신 주장 완장을 찼다. 리더로 팀을 이끌었고, 독일을 상대로 쐐기골을 넣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은 '주장' 손흥민의 전천후 매력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대회다. 와일드카드로 뽑힌 손흥민은 김학범호에서 조현우(27) 다음으로 나이가 가장 많은 선수다. 김학범 감독은 에이스 역할에 주장 선임으로 책임감까지 부여했다. '병역 면제'가 걸린 만큼, 부담스러울 수 있는 대회. 손흥민은 합류 첫날부터 팀 미팅을 열어 후배들을 독려했다. 경기장 밖에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바레인과의 첫 경기가 끝난 뒤에는 황희찬 이승우를 따로 불러 면담을 했다. 말레이시아전 패배 후, 그리고 승리한 날에도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줬다. 때로는 채찍을, 때로는 당근을 쓴다.

그라운드 안에서도 희생한다. 손흥민은 23일 이란전(2대0 승)에서 공격 포인트가 없었지만,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빈 공간이 생긴 상황에선 깊게 내려와 수비를 자처했다. 왼쪽 풀백 김진야가 다리를 절뚝거린 순간에는 "내가 수비를 하겠다"며, 힘을 불어 넣었다. 그는 희생으로 후배들이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동료가 득점하는 순간에는 가장 먼저 달려가 축하해주고, 함께 기뻐한다. 매너까지 갖췄다. 이날 이란 선수들이 패배 후 아쉬움에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손흥민은 선수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두차례의 월드컵을 치르면서 패배의 아쉬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상대팀 선수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경기장 안에선 거칠게 싸웠지만, 승리 뒤의 매너는 잊지 않았다. 그는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 선수들한테 많은 기회가 다시 있을 거라고 얘기해줬고, 그게 제가 볼 때 스포츠의 '리스펙트(존중)'라고 생각하고 경기는 경기일 뿐 사람 대 사람으로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야말로 '코스모폴리탄'적인 사고방식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울보'라는 별명도 생겼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모두 눈물을 보였다. 지난 6월 월드컵에서 멕시코에 패한 뒤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지기 싫었던 손흥민. 그는 그 순간에 흘린 눈물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일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리더십과 희생으로 솔선수범 하며 팀을 이끌고 있다.

'잘난' 막내였던 손흥민. 그는 뼈아픈 경험과 기억들을 뒤로 하고 어느덧 후배들을 다독이는 '우리 형'으로 훌쩍 성장했다. 그는 그렇게 명실상부한 한국축구의 최고의 리더가 되고 있다.

손흥민은 27일 인도네시아 버카시의 패트리어트 찬드라바가 스타디움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운명의 8강전을 치른다. '황금 세대'라 불리며 이번 대회 최강팀 중 하나로 꼽히는 우즈베키스탄을 넘어야 목표인 금메달 획득이 가능해진다. '우리 형' 손흥민을 중심으로 똘똘 뭉칠 대표팀이 최대 고비를 어떻게 넘을지 아시안게임 최고의 명승부가 펼쳐진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선수민 기자 sunso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