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싶으면 먼저 나서서 어필하라고 했습니다."
종목을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코치들은 선수들에게 심판을 향해 직접적인 어필을 자제시키는 편이다. 괜히 선수가 나서서 심판에게 항의를 하다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우려하기 때문이다. 원래 스포츠에서 심판의 권한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자칫 선수의 어필은 이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심판도 사람인지라, 만약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경고라는 제재 권한을 꺼내들 수 있다. 심한 경우 그대로 퇴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경기력 자체에 큰 손실이 생긴다. 한 마디로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그래서 일단은 코치나 감독이 이런 항의의 역할을 떠맡는 게 통상적이다.
그런데 야구대표팀의 유지현 코치는 오히려 선수들에게 "어필을 강력하게 하라"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유 코치가 이런 뒷 이야기를 밝힌 건 25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GBK야구장에서 진행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 대표팀의 훈련을 마치고 나서였다.
그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과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유 코치는 "오늘 훈련 때 선수들에게 '주자로 나가있을 때 상황이 발생하면 스스로 판단해 즉각적으로 표현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런 편이 아무래도 벤치에서 (항의를 위해) 나가는 것 보다 훨씬 더 빠르고 직접적인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두 가지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지시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엄격하게 '2루 충돌 방지' 규정이 적용 된다는 점. 이 규정이 느슨하게 적용돼 있는 KBO리그 환경에서 경기를 치렀던 선수들이 자칫 자신도 모르게 이를 위반하거나 혹은 의심을 받을 만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면 더그아웃에서 감독이나 코치가 나가서 하는 어필이 속도나 효과 면에서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래서 유 코치는 "주자들에게 애매하고 억울한 상황이 나왔을 때 먼저 판단해 직접 목소리를 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이유는 역시 비디오 판독이 따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지는 애매한 상황을 심판이 눈으로 다 확인키는 쉽지 않다. 그래서 본의를 떠나 자칫 '오심'으로 지적될 법한 상황이 많이 벌어질 수 있다.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나 일본(NPB),한국(KBO리그) 등 프로야구 3개국에는 전부 비디오 판독이 도입돼 있다. 애매한 상황이 나왔을 때 벤치에서 감독이 직접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실제로 이를 통해 원심이 뒤바뀌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바 왔다.
하지만 이런 효과적인 시스템이 GBK야구장에는 없다. 결국 애매한 상황에 맞닥뜨리거나 불공정한 판정이 나왔을 때 선수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게 가장 빠르고 정확한 판정 변경의 수단이다. 유 코치는 "스스로 경기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벤치에서 나간다면 이미 그 순간이 지나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벤치에서 나가는 것보다 선수가 직접 목소리나 제스추어로 상황에 대한 어필을 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선수들에게 별도의 지시를 내린 배경을 설명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