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은 선수 개인뿐만 아니라 팀에도 큰 시련이다. 하지만 넥센 히어로즈의 사례를 보면, 그게 꼭 나쁜 결과로만 이어지는 건 아닌 듯 하다.
물론 부상을 당한 선수가 정상적으로 회복해 돌아온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이런 경우 부상으로 인한 주전들의 일시적 공백은 새로운 선수 발굴로 인한 뎁스 강화의 기회가 된다. 올해 넥센이 좋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넥센이 창단 11년 만에 팀 최다 9연승을 달성할 수 있던 원동력도 여기에 있다.
요즘의 넥센은 엔트리에 쓸 만한 야수진이 넘쳐나 고민하는 상황이다. 이제 곧 새 외국인 선수 제리 샌즈를 1군에 넣어야 하는데, 현재 엔트리에서 누구를 빼야 할 지를 심사숙고 해야 할 정도다. 주전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과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팀 엔트리가 헐겁게만 보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완전 상황이 달라졌다.
2일 기준으로 포수를 제외한 넥센의 1군 야수 엔트리는 총 13명이다. 내야수 7명에 외야수 6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어느 하나 제 몫을 못하는 선수가 없다. 특히나 최근의 눈부신 활약으로 '주전'과 '비주전'의 경계선을 삭제시켜버린 선수도 많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내야수 김혜성 송성문이다. 외야에서는 임병욱과 김규민이 그런 케이스다. 요즘에는 사실상 주전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출전 빈도수가 적은 내야수 장영석과 외야수 허정협도 또 다른 의미에서 '제 몫'을 한다. 장영석은 1, 3루 백업과 대타, 허정협은 경기 후반에 외야 교체로 도움을 준다. 지금의 넥센 야수진은 어느 팀에 견줘도 경쟁력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두터운 선수층을 갖추게 된 출발점은 역설적으로 주전들의 연이은 부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주전 선수들의 이탈이 오히려 새 선수들의 성장을 만들어내는 자양분이 된 셈이다.
지금 주전급의 맹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의 면면을 보자. 내야수 김혜성과 송성문, 외야수 김규민. 여기에 넓게 보면 포수 주효상이나 김재현도 마찬가지다. 김혜성과 송성문은 사실 서건창과 김민성이 매우 건강했다면 지금처럼 많은 출전 기회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재능은 분명히 뛰어나지만 주전 선수들의 벽을 넘기 어려웠다.
김규민은 더 극적이다. 이전까지 아무도 그의 가치를 몰랐다. 그러나 이정후의 부상 이탈로 인해 외야 공석이 생기며 2군에 있던 김규민에게도 기회가 열렸다. 김재현과 주효상도 박동원이 건재했다면, 출전 기회를 나눠가져야 했을 것이고 그러면 공수에 걸친 성장도 훨씬 더뎠을 것이 확실하다.
물론 주전 선수들이 다쳐서 자리를 비운다고 아무나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대체 선수를 들이밀어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케이스가 훨씬 더 흔하고 많다. 넥센 선수들처럼 금세 자리를 잡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단 확실한 실력이 일단 뒷받침 돼야 하고, 코칭스태프의 적절한 도움도 필수적인데 이 조건들이 모두 들어맞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올 시즌의 넥센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모범적인 성장의 모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넥센의 상승세가 더 오래 유지될 것 같은 이유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