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역'은 없다.
무수한 경쟁을 뚫고 꿈에 그리던 그라운드에 서는 순간, '떠날 날'을 가리키는 시계바늘도 움직인다. 경쟁 속에서 수많은 사건이 반복되는 냉혹한 프로 세계의 현실을 따져보면 온전히 '은퇴'하는 것 만으로도 훌륭한 성과라고 평가할 만하다.
롯데 자이언츠 투수 이정민(39)이 은퇴했다. 지난 5월 우측 팔꿈치 내 척골신경 적출술을 받고 재활 중이었지만, 결국 마운드 복귀 대신 은퇴를 결심했다. 이정민은 "마음은 현역이지만, 두 번째 팔꿈치 수술 후 재활을 거치면서 '내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고 은퇴 결심의 배경을 밝혔다.
이정민은 경남고-동아대를 거쳐 지난 2002년 롯데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17시즌 동안 고향팀에서만 뛴 '미스터 자이언츠'다.
프로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데뷔 첫 해 가능성을 보였지만 주전 입성은 요원했다. 지난 2003년 10월 2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선 데뷔 후 첫 승을 따냈으나, 정작 이 경기서 부각된 것은 그가 이승엽에게 허용한 56호 홈런이었다.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불펜에서 보냈고, 2군을 오가는 나날이 계속됐다. 지난 2012년에는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생애 첫 포스트시즌 출전의 감격도 누렸다. 선발 등판한 진명호의 뒤를 이어 2⅔이닝 2안타 1볼넷 1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패전의 멍에를 썼다. 이듬해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반전을 일군 것은 데뷔 13년차가 된 지난 2014년이었다. 롯데의 후반기 불펜 난조 속에 1군 콜업되어 1승1패8홀드, 평균자책점 2.43을 기록하면서 버팀목 역할을 했다. 이듬해에도 불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2016년엔 5승2패9홀드2세이브, 평균자책점 3.16으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 부진에 빠졌고, 결국 올 시즌 다시 부상이 찾아오면서 결국 은퇴에 이르렀다.
이정민은 "신인 지명 후 지금까지 17시즌 동안 롯데 한 팀에서만 뛸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17시즌 동안 프로 생활을 하는 것도, 한 팀에서만 뛰는 것도 쉬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시원섭섭한 마음을 대신했다.
'선수' 타이틀을 뗐지만, 야구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이정민은 지난 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펼쳐진 삼성 라이온즈전부터 '관중석'에 앉아 '새로운 야구'를 시작했다. 구단 전력분석원 교육에 참가한 것. 포수 뒤 테이블석에 카메라와 노트북을 가져다 놓고 후배들의 도우미가 되기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이정민은 "아직 정식 채용은 아니지만, 올 시즌 말까지 교육을 받으면서 새로운 공부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정민은 "지금까지 부족한 성적에도 많이 이해해주고 응원해주신 팬들께 감사하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롯데 한 팀에서 뛰며 팬과 구단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아왔다. 앞으로도 열심히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