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승부의 세계에서 징크스는 발생과 소멸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징크스에 걸린 감독-선수들은 '공은 둥글다'를 앞세워 "징크스는 깨라고 있는 것이다."를 자주 외친다.
하지만 징크스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두 얼굴이다. 한방에 깨지다가도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생명연장'에 성공한다. 구경하는 팬 입장에서는 어느쪽이든 쫄깃한 재미를 느낀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제각각 여러가지의 징크스가 등장했다. 이들 징크스 역시 생사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며 희로애락의 새로운 스토리를 선사했다.
▶그래! 징크스는 깨는 맛이지
우루과이 공격수 에딘손 카바니(31·파리 생제르맹)는 러시아월드컵에서 최고의 '징크스 조련사'다. 자신의 발목을 잡은 악연을 깨는 대신 새로운 승리 법칙을 만들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그는 독일과의 3-4위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리고도 2대3으로 패했고 2014년 코스타리카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서 선제골을 넣은 이후 1대3으로 역전패했다. 이 때문에 '카바니의 월드컵 저주'가 생겼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골을 넣고 승리한 데 이어 포르투갈과의 16강전서도 혼자 2골을 쓸어담으며 8강행을 이끌었다. '카바니의 골=승리'라는 기분좋은 징크스가 새로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프랑스는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에서 4대3으로 승리하며 역대 아르헨티나전 4전 전패 징크스에서도 탈출, 짜릿함을 더했다. 뭐니뭐니 해도 징크스 탈출의 백미는 독일전 승리(2대0) 드라마를 쓴 한국이다. 신태용호는 한국 축구사를 새로 쓰고 세계를 놀라게 한 것 외에 아시아에 숨겨진 오랜 원한도 풀어줬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 국가들은 2014년까지 총 8차례 독일을 만나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1974년 통일 이전의 동독과 서독이 분리 출전할 때 같은 조에 속했던 호주가 0대2, 0대3 완패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사우디아라비아가 0대8 참패하는 등 '달걀로 바위치기'였다. 그나마 비등하게 버틴 국가가 2002년 4강전(0대1)과 1994년 조별리그(2대3)에서 1점 차로 패한 한국이었다. 그랬던 한국이 이번에 '큰일'을 해낸 것이다.
▶'좀처럼 안죽어!' 징크스는 계속된다
당장 1일 새벽(한국시각) 벌어진 16강전에서 또 하나 징크스가 탄생할 조짐을 보였다. 아르헨티나가 프랑스에 패하면서 '직전 대회 결승팀의 동반 눈물'이 징크스로 굳어졌다. 2014년 대회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잡고 우승했던 독일이 한국에 발목을 잡혀 조별리그 탈락한 데 이어 아르헨티나도 16강에서 바로 짐을 쌌다. 이 징크스는 우승팀의 저주가 시작된 2006년부터 궤를 같이 한다. 2002년 결승에 진출한 브라질(우승)-독일은 2006년 8강 탈락(브라질)과 4강 탈락(독일)의 쓴맛을 봤다. 이때 결승에 오른 이탈리아(우승)-프랑스는 다음 대회인 2010년 남아공에서 월드컵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 동반 탈락의 수모를 겪는다. 2010년 결승팀 스페인(우승)-네덜란드도 2014년에 조별리그 탈락(스페인)과 4강 진출(네덜란드)에 만족해야 했다. 이번에도 4개 대회 연속 결승 진출팀은 웃지 못했다.
세계적인 비운의 스타 리오넬 메시(31·FC바르셀로나)는 지독한 징크스를 끝내 넘지 못한 채 월드컵 무대에서 사라질 전망이다. 유럽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 프리메라리가 8회 우승, 국제축구연맹(FIFA) 최초 발롱도르 5회 수상+4회 연속 수상 등 프로에서 역대급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가대표 메이저대회와는 악연이 깊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제외하고 성인대표팀에서 코파아메리카 3차례, 이번에 월드컵 4번째 출전했지만 '무관의 제왕'을 벗지 못했다. 그는 2016년 코파아메리카 결승에서 칠레에 패한 뒤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이번에 재기를 노렸다. 나이도 있고 다음 월드컵에서 메시를 보기 힘들 것이란 게 중론이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