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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훈의 눈]아이슬란드는 어떻게 메시를 얼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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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가 리오넬 메시를 꽁꽁얼렸다. 핵심은 '위에서 내려와 뒤에서 수비하기'다.

2년 전, 유로 2016에서 8강이란 동화를 만든 아이슬란드가 2018년 러시아월드컵 D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엮어냈다. 역사상 첫 월드컵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승점 1점을 얻어냈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몸을 던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끈질긴 수비조직에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박경훈 전주대 교수와 전주대 축구학과 분석팀 아이슬란드의 수비조직과 이날 경기에서 핵심을 꼽았다.

우선, 수비는 짧은 시간에 조직력을 갖추기가 힘들다. 소집기간이 클럽팀에 비하여 짧은 국가대표팀은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아이슬란드는 어떤 유럽의 빅클럽 못지않은 수준 높은 수비조직을 선보였다. 분석팀 데이터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득점의 80% 이상이 만들어지는 PTA(Prime Target Area) 지역으로 35회를 접근했다. 8개는 슈팅으로 이어졌고, 무려 27개를 블로킹 하거나 압박으로 밀어냈다.

분명히 일대일 상황에서 기량은 아르헨티나가 압도적이다. 메시, 아게로, 디마리아, 이과인 등을 막아내기 위해선 협력수비가 필수다. 실제 메시가 볼을 잡으면 아이슬란드는 3명 이상이 곧바로 압박을 펼치며 수비 블록을 만들었다. 이때 주변엔 당연히 공간이 발생한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틈을 내주지 않았다. '위에서 내려와 뒤에서 수비하기'가 빛났다. 특히 동점골의 주인공 핀보가손과 EPL 베테랑 시구루드손 등 투톱이 결정적인 활약을 했다.

'위에서 내려와 뒤에서 수비하기' 방법은 현대축구에서 매우 중요한 수비 방법이다. 기본적으로 축구의 수비이론은 볼과 가장 가까운 선수가 압박을 나선다. 그리고 가까운 두 번째 선수가 압박을 나간 선수의 공간을 커버한다. 하지만 이때 상대가 빠른 템포의 공격을 하거나 일대일 경쟁에서 이기면, 좋은 수비 형태를 갖추고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핵심은 공격수에서부터 내려와, 공격수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뒤에서 몸싸움을 하고 볼을 뺏어내는 것이다. 직접적인 볼 탈취는 물론, 혹시 볼을 뺐지 못 하더라도 주변 공격수들의 공간을 제어하고 수적우위도 만들 수 있다.

한편 아르헨티나의 공격 형태도 아쉬움이 많았다. 아르헨티나의 빌드업은 후방에선 마스체라노가 진두지휘한다. 4-2-3-1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여 수비와 공격의 연결고리가 된다. 이후 하프라인 위로 볼이 넘어가면 메시가 공격의 기점이다. 하지만 미드필더와 공격진 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가뜩이나 아이슬란드의 좁혀선 강한 힘의 수비를 제쳐내기에 더 어려워졌다. 또한 메시가 볼을 소유했을 때, 볼이 없는 주변 선수들의 움직임(OFF The Ball)도 너무나 정적이었다. 마치 메시가 모두 해결할 것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러다보면 메시도 심리적인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고, PK 실축 등으로 이어졌다.

결국 수비를 잘하면, 상대가 아무리 높은 볼 점유율과 숱한 공격찬스를 만들어도 무용지물일 수 밖에 없다. 분석팀 데이터에서 이날 아이슬란드는 PTA 지역으로 총 10회 밖에 접근하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와 무려 25회의 차이가 났다. 아이슬란드 공격진 개인 기량으로 봤을 때 확률에 대한 계산까지 더해져, 앞으로도 수비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국가 인구 33만명의 소국 아이슬란드는 더욱 똘똘 뭉쳐서 수비할 것이다. 할도르손 골키퍼의 선방과 필드플레이어 전원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며 수비의 매력을 보여준 아이슬란드의 월드컵 동화, 그 결말이 기대된다.

박경훈 교수, 전주대 축구학과 분석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