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호에 '쌍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이청용(30·크리스탈 팰리스)의 세 대회 연속 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다.
신태용 A대표팀 감독은 1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국내 마지막 평가전을 마친 뒤 코칭스태프와 머리를 맞대고 최종명단(23명)을 추렸다. 부상 탓에 이미 두 명(권창훈 이근호)이 예비명단(28명)에서 제외돼 탈락자수는 세 명으로 압축된 상태였다. 여기에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김진수가 일찌감치 탈락자 명단에 포함돼 결국 러시아행 티켓을 거머쥐지 못할 선수는 두 명이었다. 여기에 이청용이 포함된 것이다.
이청용은 기성용과 함께 A대표팀을 이끄는 축이었다. 지난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겁 없는 막내의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선 월드컵 데뷔 골까지 터뜨리기도 했다. 또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 세 경기를 모두 풀타임 출전했다.
이렇게 이청용이 태극마크를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믿고 쓰는 해외파'라는 프리미엄이 있긴 했다. 그래도 세계 톱 리그로 평가받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속한 팀에서 꾸준하게 출전했기에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11년 7월 정강이뼈가 이중으로 골절되는 큰 부상 탓에 사실상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곧바로 다음 시즌 44경기에 나섰다. 2013~2014시즌에는 축구인생에서 가장 많은 47경기를 뛰었다. 비록 프리미어리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무대였지만 경기력은 그 어느 때보다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 이후가 문제였다. 볼턴에서 크리스탈 팰리스로 둥지를 옮긴 뒤 철저하게 벤치멤버로 전락했다. 프리미어리거로 다시 도전을 택했지만 크리스탈 팰리스를 이끈 앨런 파듀, 샘 앨러다이스, 프랭크 드 부어, 로지 호지슨 감독에게 외면당했다. 탈출하려고 시도해도 크리스탈 팰리스의 이기주의에 막히고 말았다. 결국 덫에 갖힌 이청용은 그렇게 고립된 채 경기력만 저하됐다. 지난 시즌 이청용은 9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이청용의 월드컵 출전이 희박해진 건 지난해 10월 유럽 원정 2연전 때였다. 유럽파를 모조리 불러 러시아, 모로코를 상대할 때 신 감독은 어느 정도 유럽파에 대한 정리를 했다. 당시부터 이청용은 50대 50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예비명단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이청용은 신 감독이 품고 있던 절반의 의심을 경기력으로 불식시키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온두라스와의 평가전 영향이 컸다. 이청용의 경기력 저하는 확연했다. 빠르고 날카롭게 상대 측면을 뚫고 문전을 위협하는 이청용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수비수 한 명도 제대로 제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선수가 돼 있었다. 이청용은 1일 보스니아전에 결장해 탈락을 예감했다.
이번 아픔으로 이청용은 '선수는 뛰어야 선수'라는 진리를 깨달았을 것이다. 다만 코리안 프리미어리거라는 자존심을 어떻게 내려놓느냐가 중요하다. 이청용 사정에 밝은 관계자에 따르면, 이청용은 또 다시 프리미어리그를 바라보고 있다. 2순위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이고 3순위가 일본 정도다. 유럽 이적시장에서 이청용의 가치가 얼마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겠지만 현실을 빨리 인식할수록 부활의 기회도 빠르게 찾아올 수 있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이청용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