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피스키스타디움(우크라이나 키예프)=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진검승부에 앞서 항상 기선 제압을 위한 싸움을 펼쳐진다. 무기는 바로 '말(言)'이다. 상대의 기를 죽이고 동시에 자신들의 기를 살리는 것, 이것이 바로 '말 싸움'의 목적이다.
25일 오후(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예프 올림피스키스타디움 기자회견장. 레알 마드리드와 리버풀의 2017~2018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을 하루 앞두고 양 팀의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리버풀 위르겐 클롭 감독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이어 레알 마드리드 지네딘 지단 감독이 출사표를 던졌다. 양 감독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선 제압에 나섰다.
▶클롭. 여유와 능청의 하모니
클롭 감독은 여유가 넘쳤다. 능청도 수준급이었다. 그러면서도 확실한 메시지를 던졌다.
클롭 감독은 시작부터 선수를 쳤다. 질문이 나오기 전 "키예프에 모든 선수들이 다 왔다. 단 부상자들만 빼고"라며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기자회견 분위기는 누그러졌다.
한 기자가 지단 감독을 예로 들어 질문했다. "지단 감독의 전술적인 능력은 별로라는 평가가 있다"고 물었다. 클롭 감독은 "나도 마찬가지"라면서 "전술적으로 별 능력없는 두 감독이 맞붙는 결승이 될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중간에 큰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한 기자가 질문을 했다. 굵직한 중저음의 멋진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클롭 감독은 기자의 질문을 끊었다. 그러고는 "당신을 기억한다. 얼굴보다도 목소리로 기억한다"며 농을 던졌다. 기자회견장이 웃음으로 가득했다. 클롭 감독은 "목소리가 더 좋아진 것 같은데?"라고 되물었다. 질문을 한 기자도 잘 받아쳤다. 그는 "그렇지 않다. 어머니가 나를 낳았을 때 내 목소리를 듣고 놀라셨다"고 했다. 그러자 클롭 감독은 "두 살 때부터 벌써 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했다. 기자는 "어떻게 알았냐"며 혀를 내둘렀다. 클롭 감독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웃었다. 클롭 감독이나 기자 모두 능청이 넘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리버풀이다
클롭 감독은 웃음 속에서도 확실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UCL결승에 선다는 것은 일생 일대의 기회"라고 했다. 그러면서 "5년 전 도르트문트를 이끌고 웸블리에서 UCL 결승전을 치렀다. 당시 상당히 강한 팀(바이에른 뮌헨)을 상대해 환상적인 경기를 했다.(참고로 당시 클롭의 도르트문트는 바이에른 뮌헨에게 졌다) 경기가 끝난 뒤나는 다시 한 번 더 이 기회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회를 우리 선수들이 내게 줬다.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했다. 여기까지 온 공을 선수들에게 확실하게 돌렸다.
그리고 메시지를 내놓았다. 'DNA론(論)'이었다. "우리 팀은 큰 일(우승)을 일궈낼 수 있는 DNA를 가지고 있다"고 입을 연 뒤 "9개월 전만 해도 그 누구도 우리가 결승전에 올 줄은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왔다. 왜냐하면 우리는 리버풀이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승 DNA'와 '우리는 리버풀'. 기자들이 헤드라인으로 뽑을만한 최고의 메시지였다.
▶지단, 냉정 그리고 신중
지단 감독은 신중했다. 그리고 냉정했다. 그는 "우리 구단에게는 역사적인 순간을 앞뒀다"면서 UCL 3년 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다시 결승전에 진출해서 좋다. 다시 올 수 없는 순간이다. 열심히 준비했다. 그것만이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했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긴 했다. 원론에 충실한 각오였다. 지단 감독은 "우리는 대단한 팀과 경기를 펼친다. 방심은 없다. 이기려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클롭 감독에 대해서는 "클롭 감독은 많이 존경한다. 그가 축구계에서 일궈낸 업적은 대단하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도 "우리 둘이 유사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말하기 어렵다. 각각의 감독들은 저마다 다른 법"이라고 했다.
▶숨길 수 없는 호날두 자랑
신중하고 원론을 쏟아낸 지단 감독. 그런 그에게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크게 자랑하고픈 보석이었다. 그는 "현재 크리스티아누의 몸상태는 좋다. 다만 아직 150%는 아니다. 현재 그는 140%의 몸상태"라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내일은 올 시즌의 마지막 경기다. 그는 이런 경기를 하기 위해 이때까지 살아왔다"면서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을 자신했다.
지단 감독은 "내게 축구란 단순하다. 두 팀이 맞붙는다. 서로를 알고 상대를 격파하기 위해 뛴다. 볼을 잡고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상대를 위협한다. 그게 축구다"고 했다. 지단 감독은 "여기까지 오기 위해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내일은 더 힘들 것이다. 최대한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상대를 괴롭히고 싶다"는 출사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