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용 봅슬레이·스켈레톤대표팀 총감독(40)은 지난 2년간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자택에서 머문 시간이 45일밖에 되지 않는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2017년에는 17일에 불과했다. 각각 세 살과 네 살 된 딸들을 두고 있는 이 감독은 "지도자로서는 주위에서 90점을 주지만 아빠로서는 30점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며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면서 "내가 집에 막 도착했는데 아이들이 '아빠, 또 언제 가?'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고 고백했다.
이 감독이 가장 미안해 하는 존재는 '아내' 김미연씨(40)다. 올림픽이 끝나기 전까지 전쟁 같은 육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신경 쓰지 못하는 집안일 대부분을 감당해내야 했다. 무엇보다 컬링 국가대표로 잘 나가던 아내가 자신을 만나 올림픽 무대를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미안함이 가슴 한 켠에 항상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상남자' 기질로 미안함을 한 방에 만회했다. 이 감독은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에서 열린 23주년 코카-콜라 체육대상 시상식에서 우수지도자상을 수상했다. 이날 이 감독은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시상식 단상에 올랐다. 주최측의 시나리오에도 없던 광경이었다. 깜짝 놀란 아내는 남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억센 남편의 힘을 못이겨 단상에 올라 함께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
이 감독의 수상소감은 아내를 비롯해 장내 참석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 감독은 "아내는 컬링 선수로만 12년을 활동했다. 전국동계체전 8연패를 했고, 한국 최초로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아내는 평창올림픽 출전의 꿈을 안고 있다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바람에 꿈을 접고 뒷바라지에만 전념했다"며 "아내는 한 번도 이런 시상식 단상에 서지 못했는데 이 상은 아내가 받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남편의 감동적인 소감에 눈물을 참던 김씨는 이내 표정을 수습한 뒤 "예상하지 못했는데 놀랐다. 집에서 보지 못한 멋진 모습을 보니 매우 좋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사실 이번 시상식에서 우수지도자상 경쟁은 치열했다. 이 감독과 김선태 쇼트트랙대표팀 감독(42)이 맞붙었다. 김 감독도 소통의 리더십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세 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심사위원들의 격론이 펼쳐졌다. 결국 '썰매 불모지'인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의 스켈레톤 금메달과 봅슬레이 4인승 은메달을 일군 이 감독이 선택됐다. 전날 김 감독에게 전화를 받은 이 감독은 "김 감독님께서 '내가 대장암은 이겼는데 너는 못 이겼다'고 말씀하셨다"는 말로 좌중에 웃음을 던졌다.
그러면서 "빛이 있으면 항상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분들이 응원, 격려를 해주신다. 그래서 모든 선수가 빛났다.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해주신 분들께 모든 영광을 드리겠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