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골리' 재웅이를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
대한민국 장애인아이스하키팀은 끈끈한 원팀이었다. 진정한 원팀은 위기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서광석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13일 오후 강릉아이스하키센터에서 펼쳐진 평창패럴림픽 B조 예선 3차전 미국전에서 0대8로 패했다. 일본, 체코에게 2연승을 달린 후 최강 미국에 첫 패하며 2승1패, 조2위로 준결승행을 확정지었다. 준결승에서 캐나다와 맞붙는다.
이날 한국은 1피리어드 4분32초만에 팀 페널티를 받으며 수적 열세속에 6실점했다. 1-2피리어드를 철벽수비로 버텨내고 3피리어드 역습으로 골을 노리자던 작전은 1피리어드 대량실점으로 인해 흔들렸다. 4실점한 직후 서 감독은 베테랑 주전골리 유만균 대신 '1996년생 세컨드 골리' 이재웅을 전격 투입했다.
이재웅의 첫 패럴림픽 무대였다. 선천성 뇌병변 장애로 다리는 불편하지만 타고난 상체 힘과 던지기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재웅은 지난해 육상을 시작한 지 불과 1년만에 충북장애인체육대회 창던지기, 원반던지기에서 2관왕에 올라 화제가 됐던 선수다. 2014년 아이스하키를 처음 시작한 후 4년간 주전 골리 유만균 뒤에서 힘든 훈련을 버텨낸, 준비된 스물두 살 신예 골리에게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 기회가 찾아왔다.
1피리어드를 0-6으로 마친 후 라커룸에서 대표팀은 심기일전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서 응원해주시는데 우리에게 포기란 절대 없다. 지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2피리어드, 5명의 선수들은 강력한 보디체킹으로 미국 선수들의 스틱을 막아섰다. 골리 이재웅은 폭풍 선방을 펼쳤다. 무실점으로 2피리어드를 마쳤다.
3피리어드, 35분51초 김영성이, 36분26초 최광혁이 잇달아 페널티를 받으며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최강 미국을 상대로 3대5의 수적열세 속에 정승환, 한민수, 조영재 3명의 베테랑 에이스가 링크에 남았다. 10년 넘게 눈빛 호흡을 맞춰준 한솥밥 '뜨거운 형제'들은 죽을 힘을 다해 달리고 미친 듯이 막아섰다. 몸쌈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이 장면을 언급하자 정승환은 이렇게 말했다. "심장이 터지는 것같았다. '골리' 재웅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었다. 실점할 때마다 우리 골리한테 너무 미안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아쉽다."
'월드클래스' 공격수 정승환은 1m67의 작은 체구에도 악바리 근성으로 상대를 물고 늘어진다. 더 질긴 수비로 최후방 골리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3대5의 열세를 온몸으로 버텨낸 '캡틴' 한민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정말 착실하고 좋은 후배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재웅이가 죄송하다며 실수한 장면을 이야기하기에 '실수해서 죄송한 거라면 내가 너한테 죄송한게 너무나 많다'고 말해줬다. 재웅이는 장차 우리나라 파라아이스하키 최고의 골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며 후배의 기를 세워줬다.
1피리어드 후배에게 골문을 물려준 '주전 골리' 유만균 역시 진심으로 후배의 패럴림픽 데뷔전을 칭찬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짐을 지게 한 점은 선배로서 미안하다. 잘 버텨줘서 기특하다. 오늘 재웅이는 정말 멋있었다"며 후배의 선전을 칭찬했다. '제2의 유만균'이 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손사래쳤다. "재웅이는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골리가 될 것이다."
2006년 토리노패럴림픽 때만 해도 세계 최하위를 전전하던 한국이 불과 12년만인 평창패럴림픽에서 당당히 4강에 올랐다. 국내 실업팀은 강원도청 단 하나뿐, 전용링크 하나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끌어주며 여기까지 왔다.
일본-체코전, 짜릿한 승리 뒤에 보여준 모습도 든든했지만, 미국전 쓰라린 패배 뒤에 보여준 이 팀의 품격은 남달랐다. 후배는 선배를 향한 존경심을 드러냈고, 선배는 후배를 따뜻하게 보듬었다. 미국전 0대8 패배후 아이스하키팀이 보여준 '원팀 정신'은 왜 이 팀이 위대한지, 어떻게 이팀이 여기까지 성장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강릉=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