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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김봉길호, 4년 전 이광종호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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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이광종호도 그랬다.

시계를 2014년 1월로 돌려보자. 당시 故 이광종 감독이 이끌던 U-22 대표팀은 오만 무스카트에서 열린 2014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22 챔피언십에서 4위에 머물렀다. 황의조(감바 오사카) 윤일록(요코하마 마리노스) 백성동(수원FC) 김영욱(전남) 등이 뛰었지만, 목표로 한 우승에는 실패했다. 당시에도 경기력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공격은 답답했고, 수비도 탄탄하지 않았다. 이 감독은 연령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직에 올랐지만, '성인 대표팀에서는 이 감독의 리더십이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8개월 뒤, 이광종호는 환희의 주인공이 됐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나선 이광종호는 일본, 북한 등을 연파하며 28년만에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광종식 실리축구가 꽃을 피우는 순간이었다.

4년 후, 김봉길호의 처지도 비슷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김봉길호는 1월 중국 장쑤에서 열린 2018년 AFC U-23 챔피언십에 나섰지만, 4위에 머물렀다. 박항서 감독이 이끈 베트남이 돌풍을 일으키며, 김봉길호의 부진은 상대적으로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은 처참했다. 공격도, 수비도 특색이 없었다. 공격은 단조로웠고, 수비는 엉성했다. 팬들의 불만도 하늘을 찔렀다. 특히 김 감독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감독 선임 과정부터 선수 선발, 전술, 경기 운영까지 비난 일색이다. 이대로라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도 힘들다'는 의구의 눈초리가 이어지고 있다.

사실 김봉길호는 이번 대회를 정상적으로 치르지 못했다. 당초 김 감독이 팀의 중심으로 여겼던 이광혁(포항)과 황인범(아산)이 부상과 군입대로 제외됐다. 최종 엔트리서 빠진 한찬희(전남)는 1차 테스트 당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주전 왼쪽 윙백으로 생각했던 서영재(함부르크)도 대회 직전 부상으로 빠졌다. 이들 뿐만 아니라 시즌을 마친 K리거들의 컨디션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결국 대학생 선수들을 대거 뽑을 수 밖에 없었다. 구상이 틀어진 김 감독은 원하던 축구를 펼칠 수 없었다. 적극적이고 투쟁적이었던 인천 시절과 달리 소극적인 축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중국으로 넘어간 뒤에는 정작 다른 부분과 싸워야 했다. 대표팀 관계자는 "계속된 비판의 목소리로 선수들의 기가 죽었다. 김 감독이 선수들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귀뜸했다. 가뜩이나 '골짜기 세대'라는 비판 속에 움츠려 들었던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겨우겨우 4강까지 올랐지만, 끝내 반전에는 실패했다. 준비한 것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아시안게임은 다른 아시아 대회들과 비교해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 병역 문제가 걸려 있는 만큼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이 부분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아시안게임에서 부진했던 이유다. 김 감독의 온화한 카리스마는 아시안게임에서 더욱 빛날 수 있다. 황희찬(잘츠부르크) 김민재(전북) 백승호(지로나) 이승우(베로나) 이진현(오스트리아빈) 등에 손흥민(토트넘)이 와일드카드로 가세할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전력상 이번 U-23 챔피언십과 비교가 되질 않는다. 한 차례 국제대회를 치른 김 감독 역시 달라질 모습을 자신하고 있다.

2014년 1월 이 감독을 믿지 않았다면, 인천아시안게임의 영광은 없었다. 김봉길호도 같은 드라마를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