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임씨요? 저 그건 잘 몰라요. 그냥 수풀 임씨(林)라던데…."
FC서울을 떠나 광주에 온 1m68 단신 미드필더 임민혁(20)과의 대화. 뭔가 시작부터 턱 막히는 느낌이다. "어? 기자님도 임씨네요! 임씨가 그렇게 많지 않던데!" 해맑은 목소리에 다시 용기 내서 물었다. '머리를 굉장히 짧게 잘랐는데 혹시 무슨 이유라도?' "그냥 밀어보고 싶었어요!" 애초에 거창한 사연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간단명료한 답에 또 한번 좌절. '아~ 그렇군요.'
기자의 당혹감을 읽었는지 그가 한 마디 툭 덧붙인다. "사실 제가 머리를 올리고 축구하는데 뛰다보면 내려와서 자꾸 신경쓰이더라구요. 근데 이 답변은 너무 일반적이잖아요."
나름 의도한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평범을 거부하는 약관의 청년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한눈에 범상치 않은 느낌. 주위에서는 그를 뭐라고 부를까. "친구들이 '사이코'라고 해요.(웃음) 뭐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그러려니 해요. 혈액형이 AB형이기도 하고…." 임민혁은 아마도 지금까지 광주에 몸 담았던 선수 중 가장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일지 모른다. 이른바 '4차원'이다.
통통 튀어보이지만 실제 생활은 모범생이 따로 없다. 대학 새내기 나이, 어쩌면 남자의 일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싶은 시기다. 임민혁이라고 왜 그런 바람이 없을까. 이처럼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가 말이다. 하지만 그는 '완벽한 절제'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800m 육상선수로 나서 우승을 차지했던 초등학교 4학년생. 그걸 계기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시작된 축구는 인생의 전부였다. 해질녘 무리지어 학원으로, PC방으로 향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꾹 참고 운동장을 뛰던 수원공고 시절. 아무리 늦어도 자정 전에는 잠자리에 들었다. 성인이 돼서도 술과 유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오직 최고를 위해, 성공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2016년 K리그 명문 FC서울 유니폼을 입을 때까지만 해도 임민혁은 낙관했다. '아, 내가 잘 가고 있구나.'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학창시절 이름 날렸던 임민혁이지만 프로에선 단지 어린 선수 중 하나일 뿐이었다. 2년 동안 K리그 출전은 고작 7경기에 불과했다.
익숙치 않은 답답함과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 느껴지는 막막함. 임민혁은 마음의 성장통을 겪었다. "내가 정체돼있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든 뛰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광주행 열차에 몸을 실은 이유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 같은 청년, 임민혁. 하지만 그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돼 있다. '최고의 선수', 한결같은 그의 꿈이다. "내 분야에선 최고가 되고 싶어요. 제일 부족한 피지컬을 보완하기 위해 하루에 5~6끼를 먹고 있습니다."
모처럼 나온 평범한 대답.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곧바로 '임민혁다운' 말이 이어졌다.
"광주 전술에 맞춰 최선을 다 할거에요. 그렇지만 쉬운 축구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앞으로 치고 가는 플레이랑 스루 패스를 잘 하거든요. 팬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그런 번뜩임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반짝이는 그의 머리처럼, 똘망똘망한 두 눈망울처럼 빛나는 미래를 향한 몸부림. 스무살 청년의 꿈이 땀방울 속에 영글어가고 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