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김태리에게 소포모어 징크스(첫 작품에서 성공한 후 내놓은 두 번째 작품이 흥행이나 완성도에서 첫 작품에 비해 부진한 상황)는 없었다.
'강철비'(양우석 감독), '신과함께-죄와 벌'(김용화 감독)에 이어 오는 27일 개봉하는 빅3 영화의 마지막 주자 '1987'(장준환 감독)은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시작으로 6월 항쟁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1987년도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린다.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박희순, 이희준 등 화려한 주연배우부터 강동원, 여진구, 문성근, 김의성, 오달수, 고창석 등 주연배우 만큼 쟁쟁한 특별출연 배우들이 명품 연기를 펼친 가운데 영화의 '홍일점'인 김태리가 활약이 유난히 눈부시다.극중 김태리가 연기하는 연희는 구멍가게 '연희네 슈퍼'에서 엄마와 외삼촌과 함께 사는 평범한 87학번 대학 신입생이다. 교도관인 외삼촌 부탁으로 옥중서신을 대신 할 정도로 당차지만 달랑 셋뿐인 식구 걱정 안하고 자꾸 위험한 일을 하는 삼촌과 바위를 치는 것 같은 데모를 이어하는 선배와 동기들을 무모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입학 직후인 3월 첫 미팅을 하러 간 명동 거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휘말려 난생처음 독한 최루탄을 맡고 광주에서 일어난 진실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보게 된 후 내면적 갈등을 겪게 된다.
정부와 권력에 맞서는 이들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가족의 안위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선뜻 나지 않는 용기 때문에 갈등하고 고뇌하는 연희라는 인물은 가장 일반적인 대중의 모습을 대변하고 관객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실제 인물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것과 달리 연희는 영화를 위해 100% 창조된 인물인데, 그럼에도 연희가 튀지 않고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와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던 건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이 묻어나는 나는 김태리의 연기에 있다.
김태리는 지나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를 통해 대중에게 이름과 얼굴을 알렸다. 시대와 신분, 성(性)의 장변까지 뛰어넘어 스스로 자신의 운명과 사랑을 개척하는 숙희 역을 맡아 어려운 감정 연기부터 파격적인 노출연기까지 완벽히 해내며 그해 열린 시상식 신인상을 석권했다.하지만 항간에서는 강렬한 데뷔작을 통해 쏟아진 관심으로 인해 그의 차기작에 대해 우려를 보내는 시선도 있었다. 데뷔작과 데뷔작에서 맡았던 캐릭터가 엄청나게 강렬했기 때문에 해당 이미지를 벗을 수 있을지 물음표가 그려졌기 때문. 특히 앞서 유난히 수위가 높고 강렬한 작품, 혹은 쎈 캐릭터로 '충무로 블루칩'이라고 불렸던 배우들이 해당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차기작에서 쓰디 쓴 흥행 부진, 혹은 혹평을 받은 바 있기 때문에 김태리의 차기작 행보에 더욱 눈길이 쏠렸다.
하지만 김태리는 '1987'로 자신에게 쏟아진 우려를 말끔히 씻었다. 권력의 부당함을 알고 그에 맞서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지만 저항했던 이들과 그 가족의 아픔과 상처 또한 너무 잘 알기에 상식처럼 침묵에 동조하는, 하지만 결국에 6월의 광장에 나서게 되는 이들을 대변하며 김태리. 감정의 진폭을 통해 관객을 1987년의 감정 한가운데로 데려가는 김태리는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김태리 라는 배우의 스펙트럼'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smle0326@sportschosun.com, 사진=영화 '1987' '아가씨'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