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액 5억, 옵션 35억원. 이 계약을 바라보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소위 '준척급'으로 평가되는 FA(자유계약선수)들의 겨울이 시리기만 하다. 손아섭 민병헌(이상 롯데 자이언츠) 강민호(삼성 라이온즈) 황재균(kt 위즈) 등 거물들은 엄청난 돈을 받고 새 둥지를 찾았지만, 아직 13명(김현수 제외)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못했다.
대부분 나이가 있거나, 보상선수를 내주면서까지 데려올 만한 선수가 아니라는 판단에 계약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정근우(35)를 보자. 누구도 정근우가 최고 수준의 2루수라는 걸 부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37세다. 계약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4년 장기계약은 부담스럽다는 게 원 소속구단 한화 이글스 입장이다. 4년 전 한화가 총액 70억원을 투자해 모셔갈 때와 상황이 다르다.
많은 선수들이 "돈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넌지시 "기간은 채워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계약 기간도 돈과 연결된다. 계약기간이 보장돼야 총액이 늘어난다. 선수는 어떻게든 긴 계약기간에 많은 돈을 받고 싶다. 구단은 자선단체가 아니기에, 현실적인 투자를 한다. 실패가 뻔한 곳에 거액을 투자할 리 없다. 입장 차이가 크면 협상이 진전될 수 없다.
시장에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있다. 지금까지 도장을 찍지 못한 선수라면, 확 나아진 조건에 계약을 할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한다. 어차피 돈을 주고 계약을 해주는 곳은 구단이다.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선수는 만족스럽지 못한 조건에 계약서에 사인하게 될 것이다.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존심이 상한다며 야구를 접는 선수는 지금껏 보지 못했다.
버텨봐야 힘든 상황이라면, 시각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보장액만 고집하지 말고, 옵션 금액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작년 초 일본인 투수 마에다 겐타가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 입단할 때 노예계약 논란이 있었다. 계약기간 8년에 총액이 1억달러가 넘었지만, 보장액은 2500만달러였다. 좋은 공을 갖고있는 건 알지만, 너무 많이 던져 부상 우려가 있는 마에다에 인센티브 비율을 대폭 늘린 것이었다. 안 아프고 계속 잘 던질 자신이 있으면 계약을 하자는 것이었고, 마에다는 이를 악물고 던졌다. 지난해 16승11패, 올해 13승6패를 기록했으니 아마 많은 옵션 금액을 챙겼을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최근 FA 계약을 보면 계약금, 보장 금액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돈 문제에 얽히지 않고 마음 편하게 야구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는 선수들이 팀을 고를 때 계약금 규모부터 살핀다. 많은 돈을 받아 책임감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동기부여가 안돼 나태해질 가능성이 있다.
구단이 알아서 많은 보장금액을 책정해주는 선수는 논외다. 다만, 선수는 많은 돈을 받고 싶은데 구단이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듯 하면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 3년 15억원을 제시받았다고 하면, 4년 보장액을 5~10억원으로 낮추고 대신 옵션 금액을 늘려 총액 30원으로 제의한다면 어떨까. 대신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록을 남길 때 받는 것으로 말이다. 그 기준은 구단과 선수가 상의하면 된다. 구단도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고, 선수도 너무 쉬운 조건을 제시하면 안 된다. 그래서 만약 이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구단은 기쁜 마음으로 연봉을 지급할 수 있다. 만약, 실패한다 하더라도 이 계약에 대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어 좋다. 만약, 이런 조건이라면 구단도 베테랑 선수들에 무조건 차가운 시선 만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선수 입장에서도 계약 전에는 "몸 좋다. 자신있다"고 말했다 조용히 사라지고 마는 '먹튀' 계약의 가해자로 이름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적당한 옵션을 채울 자신이 없는데도 무조건 대우만 받을 생각을 한다면, 프로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옵션 위주 계약 성공 사례가 늘어나야 FA 시장도 더 건강해질 수 있다. 선수들은 단순하게 보장액이 적어지면 손해라고 하겠지만, 결국은 옵션 포함으로 총액을 더욱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구단도 선수를 더 믿고 투자할 수 있다.
스포츠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