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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경의 J사커]부임 첫해 쓴 윤정환의 '벚꽃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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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일본엔 '벚꽃 바람'이 불었다.

세레소 오사카가 리그컵 정상에 올랐다. 지난 1967년 얀마디젤축구부로 창단한 지 꼬박 50년 만에 얻은 공식 대회 첫 우승 트로피다. 세레소 팬들이 채운 사이타마스타디움 관중석의 반쪽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경기장 중앙 스탠드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효하는 세레소 선수들을 그라운드 밑에서 바라보는 윤정환 감독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 했다.

윤 감독으로선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2014년 시즌 도중 사간도스 지휘봉을 내려놓았던 윤 감독은 올초 세레소 사령탑에 오르며 2년 6개월여 만에 일본 무대에 복귀했다. 지난해 J2(2부리그) 플레이오프를 거쳐 J1으로 승격한 세레소를 향한 전망은 비관적이었다. K리그 클래식 울산 현대에서 '지지 않는 축구'를 보여주겠다던 윤 감독의 바람도 '절반의 성공'에 그친 터였다. 사간도스 시절 바람몰이를 했던 윤 감독이지만 '세레소에서 과연 통할까'하는 의문부호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윤 감독은 빠르게 팀을 장악했고 리그컵에선 23세 이하 유스 선수들을 집중 활용하는 철저한 로테이션 정책을 펼친 끝에 결국 우승까지 내달렸다. 일본 현지 언론들은 '윤정환이 세레소를 바꿔 놓았다'고 평하고 있다.

'윤정환 스타일'의 핵심은 '원 팀(One Team)'이다. 울산 시절 그가 추구했던 '지지 않는 축구'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개개인의 기량보다는 조직적인 수비로 뒷문을 다지고 철저한 공격 패턴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방식이었다. 효과가 바로 드러나진 않았다. 일본에서 현역 생활을 마치고 지도자로 데뷔하면서 K리그와 10년 넘게 멀어졌던 윤 감독과 개개인의 색체가 강했던 울산의 스타일이 접점을 찾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만년 우승후보'로 불리는 울산의 명확한 지향점도 K리그에서는 '신인 지도자'나 다름없었던 윤 감독에겐 압박감을 줄 만했다. 부임 2년차인 2016년 울산을 4위로 이끌면서 가능성을 봤지만 울산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울산에서의 경험은 세레소에서 전화위복이 됐다. 세레소는 개개인의 역량은 뛰어나지만 조직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팀이다. 숱한 스타들이 거쳐갔지만 무관의 한을 좀처럼 풀지 못했다. 윤 감독이 부임한 시기에도 야마구치 호타루, 가키타니 요이치로 등 일본 대표 출신 선수들이 버티고 있었다. 윤 감독은 특유의 집중력으로 세레소 선수단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했다. 산케이신문은 '윤 감독 부임 뒤 세레소는 하루에 3차례씩 강훈련을 하면서 느슨해질 수도 있는 팀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형편없는 경기를 펼칠 때면 라커룸에선 윤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승리를 향한 집착처럼 비춰질 수도 있는 열정은 세레소 선수들을 조금씩 깨우기 시작했다. 세레소는 올 시즌 두 차례나 두 자릿수 무패 행진을 달렸고 한때 J1 1위까지 올라섰다. 리그컵 우승 뿐만 아니라 리그 상위권으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 도전 중이고 FA컵인 일왕배에서도 4강에 올랐다. 세레소 유스 출신인 가키타니는 리그컵 우승 뒤 "지금의 세레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윤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미드필더 사케모토 노리유키 역시 "선수들 스스로 서로를 도우며 전진하는게 윤 감독의 팀 만들기 방식"이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칼럼니스트 요시자키 에이지는 일본 스포츠전문지 넘버에 기고한 글에서 '(세레소가 달라진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감독의 공'이라고 평가했다.

윤 감독은 "결과를 내야 역사가 된다. (리그컵 우승으로) 내 자신에게도 새로운 역사가 쓰였다"고 감격했다. 그러면서 "아직 끝난게 아니다. 리그, 일왕배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시즌을 마무리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리그컵에서 '벚꽃엔딩'을 쓴 윤 감독의 성공을 기원한다.

스포츠2팀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