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의 부담감 속. 그것도 한국시리즈의 우승을 결정짓느냐 아니냐의 순간에서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선수가 있을까.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5차전 KIA의 7-6의 리드 속에 맞이한 9회말. 2차전 완봉승의 주인공 양현종이 우승의 마무리를 위해 올라왔고, 타석은 4번타자 김재환. 초구 스트라이크 이후 양현종이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존을 외면했고, 결국 볼넷으로 선두타자가 출루했다.
포수 김민식이 마운드로 올라갔다. KIA로선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을 터. 그런데 TV중계방송에 나온 둘은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후 실책과 볼넷으로 1사 만루의 위기가 됐지만 양현종은 침착하게 박세혁과 김재호를 잡아내고 8년만에 V11을 달성했다.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민식이 했던 말은 "대 투수가 왜 쫄아요"였다고. 20승의 에이스 양현종이 긴장하냐는 뜻이었다. 그말에 긴장했던 양현종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그의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감도 사라졌다. 김민식은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주면 안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볼넷을 내줬다. 현종이 형도 긴장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 긴장을 풀어줄까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며 "현종이 형도 '알겠다'며 웃었다"라고 했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도 했다고. "아무래도 완봉했을 때의 2차전처럼 공이 좋지는 않았다. 힘이 조금 떨어져 있었다"는 김민식은 "마운드에서 현종이 형이 '공 괜찮냐'고 물어봐는데 아니요라고 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자신있게 던져요'라고 했다"고 말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였다. 김재호의 파울플라이를 잡은 뒤 '우승 확정 공'이 된 소중한 그 공을 버리고 마운드로 달려가 양현종과 기쁨의 포옹을 했다. "무슨 정신으로 그 공을 버렸는지 모르겠다"며 "챙겨야지하고 생각했었는데 우승하는 순간 다 까먹었다"며 웃었다.
SK 와이번스에서 백업 포수로 올시즌을 시작한 김민식은 4월 7일 트레이드가 된 이후 KIA의 주전포수가 됐고, 정규시즌 우승에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양현종과 얼싸안은 2017년 한국시리즈의 우승 장면은 그에겐 최고의 순간이 됐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