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의 통합 우승 주역, 무등골 다섯 호랑이
8년 만의 통합우승이자 타이거즈 군단의 11번째 한국시리즈 정상. 그 원동력은 올 시즌 리그를 뒤흔든 다섯 호랑이의 활약에서 비롯됐다.
KIA는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대-으로 승리하며 1패 뒤 4연승으로 한국시리즈를 거머쥐었다. 2009년 이후 8년 만에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이다. 또한 '타이거즈' 구단의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기도 했다.
이런 대업을 이끈 건 팀 전력의 핵심, 다섯 호랑이였다. 다른 선수들의 활약도 간과할 순 없지만, 이들 핵심 5인방의 활약은 더 돋보였다. '20승 원투펀치' 헥터 노에시와 양현종를 필두로 '모범 FA 4번타자' 최형우와 제대 후 업그레이드 된 실력으로 정규시즌 타격왕에 오른 김선빈, 마지막으로 KIA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20홈런-20도루'을 달성한 로저 버나디나가 바로 그 호랑이 5인방 멤버다. 그들의 활약을 집중조명했다.
▶우유 빛깔 타이거 양현종
KIA 프랜차이즈 스타 양현종의 트레이드 마크는 안경과 새하얀 피부다. KIA 팬들도 그래서 한때 관중석에서 그가 나올 때면 '우유 빛깔 양현종!'을 연호하곤 했다. 창백해 보일 정도로 유난히 하얀 얼굴 때문에 다소 유약한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양현종의 겉모습만을 보고 잘못 판단한 것이다. 사실 그의 가슴속에는 뜨겁게 타오르는 '불'이 있다. 승리에 대한 투지와 에이스로서의 책임감을 언제나 품고 있는 '강한 남자'였다. 결국 양현종은 올해 드디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음껏 펼쳤다. 정규시즌에서 20승6패, 평균자책점 3.44를 기록하며 한국 최강의 좌완 에이스로 우뚝 선 것이다. 이런 양현종의 올해 최고 투구는 역시 지난 26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2차전이다. 그는 9이닝 동안 122개의 공을 뿌리며 마운드를 홀로 지킨 끝에 1대0 완봉승을 거뒀다. 역대 한국시리즈 최초의 1대0 완봉승. 이 승리로 KIA는 1차전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 대반전의 서막을 열 수 있었다.
그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30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7-6으로 쫓기던 9회말 마무리로 깜짝 변신해 승리를 지켜내며 세이브까지 따냈다. 1승1세이브. 평균자책점 제로. 양현종은 2017 한국시리즈 최고의 선수였다. MVP는 당연히 그의 몫이다.
▶도미니칸 타이거 헥터
지난해 처음 한국무대를 밟은 헥터는 15승5패, 평균자책점 3.40을 기록하며 단숨에 에이스가 됐다. 그러더니 올해는 한층 더 무서워졌다. 30경기에 등판해 무려 20승(5패)을 따내며 리그를 평정했다. 1m90의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150㎞대의 강속구과 '명품'으로 평가받는 체인지업을 주무기로 쾌승 행진을 이어나갔다. 헥터의 등판은 거의 승리 보장수표나 다름 없었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의 활약은 정규시즌에 못 미쳤다. 1차전에서는 6이닝 5실점(4자책)을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됐고, 4일 휴식 후 나온 5차전에서는 6이닝 동안 5실점을 기록했다. 6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하다가 7회에 무너진 탓이다. 하지만 헥터의 한국시리즈 부진을 탓할 순 없다. 이미 그는 정규시즌에서 최선의 활약을 펼쳤다.
▶FA 타이거 최형우
최형우는 입지전적인 선수다. 프로 입단 후 한 차례 방출되는 설움을 겪었지만, 밑바닥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의 반열까지 오른 '성공한 흙수저'다. 그런 그가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FA로 풀리자 KIA가 4년간 총액 100억원에 덥썩 잡았다. 전주 출신인 최형우가 고향 지역 프랜차이즈 팀으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역대 FA 선수 중에는 이적 첫 시즌에 부진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형우는 달랐다. KIA 4번 타자로 자리잡자마자 제 몫을 했다. 정규시즌 142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4푼2리(6위)에 26홈런(공동 12위) 120타점(2위), 출루율 4할5푼(1위)으로 맹활약하며 몸값을 톡톡히 해낸 모범 FA였다. 최형우가 4번 자리에서 이런 맹타를 휘두르지 않았다면 KIA의 통합우승도 어려웠을 것이다.
▶플라잉더치 타이거 버나디나
만약 로저 버나디나를 시즌 초반 퇴출했다면 어땠을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질 뻔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메이저리그 7시즌을 경험한 버나디나는 시즌 초반 타격 부진의 늪에 빠져 있었다. 5월 중순까지 타율이 2할3푼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KIA 김기태 감독은 버나디나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버나디나의 부진은 단지 시즌 초반 새 리그에 적응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감독의 굳건한 믿음 속에 버나디나는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났다. 리그 적응을 마친 버나디나는 5월 중순 이후 활화산처럼 터졌다. 결국 3할2푼에 27홈런 111타점에 32개의 도루까지 곁들이는 만점 활약을 펼친다. KIA 외국인 타자로서는 처음으로 '20-20' 클럽에 가입한 버나디나는 '호타준족'의 표본이었다. 그는 특히 한국시리즈에서 미친 활약을 펼쳤다. 5경기에서 무려 5할대의 초고감도 타격으로 팀 공격의 중심에 섰다.
▶리틀 빅 타이거 김선빈
2008년 2차 6라운드로 KIA에 입단했을 당시, 김선빈에게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는 그저 '현역 최단신 선수'라는 타이틀로 소개됐을 뿐이다. "저 키로는 프로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코치도 있었다. 김선빈은 상대팀 뿐만 아니라 이런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러면서도 치열하게 싸웠다.
그는 승리자다. 끝내 편견을 이겨냈고, 그 어떤 투수의 공도 이겨냈으며, 쉴 새 없이 날아오는 까다로운 타구마저도 이겨냈다. 입단 하자마자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찬 김선빈은 2014시즌까지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는 시즌 후 조용히 상무에 입단했다. 그리고 이 기간을 새로운 업그레이드의 계기로 만들어냈다.
2016시즌 막판에 제대한 김선빈은 2017시즌 혁명을 일으킨다. 정규시즌 137경기에서 타율 3할7푼(476타수 176안타). 프로 데뷔 10년만에 타격왕을 꿰찬 것이다. 군 복무 이전까지 김선빈은 안정된 수비력을 지닌 괜찮은 타자였다. 그러나 이 정도로 빼어난 타격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 2년간 김선빈에게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혼자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그가 편견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한계마저 깨트렸다는 건 확실하다.
잠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