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달성' 여부로 시즌 성패를 판단한다면 제주의 올 시즌은 분명 '실패'다.
제주에게 우승은 '한'이 서린 목표였다. 1989년 전신인 유공의 우승 이래, 무려 28년간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올해 야심차게 승부수를 띄웠다. 6년만에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 복귀한 제주는 겨우내 '알찬 영입'에 성공했다. 조용형 진성욱 박진포 이찬동 이창근 최현태, 멘디, 마그노, 알렉스 등 '알짜배기'들을 대거 영입했다. 더블스쿼드를 갖추게 된 제주를 향해 '다크호스'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제주 역시 K리그, ACL, FA컵 셋 중 하나는 반드시 거머쥐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제주의 우승 도전은 결국 빈손으로 마무리됐다. 제주는 29일 전북에 무릎을 꿇으며 리그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16강에서 멈춘 ACL, 일찌감치 탈락한 FA컵에 이어 최후의 보루 마저 놓쳤다. 시즌 초반 보여준 임팩트가 워낙 강렬했기에 더욱 아쉬운 시즌이었다. 전북전이 끝난 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누운 선수들과 경기 후 기자회견 조차 잊을 정도로 멍했던 조 감독의 모습이 그 뼛 속 깊은 허탈감의 단면을 보여줬다. 그랬다. 제주는 또 한번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단순히 실패로 치부하기에는 제주에게 올 시즌은 너무나도 특별했다. 팀에 새로운 DNA를 새기기 시작한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제주에는 그동안 두가지 이미지가 있었다. 하나는 강팀도, 약팀도 아닌 '애매한 팀'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비를 넘지 못하는 '유약한 팀'이었다. 모두 상대를 두렵게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승점을 쌓는 강팀과는 거리가 있는 '이미지'였다. 스타급 미드필더와 특급 외인을 앞세운 나쁘지 않은 스쿼드, 짧은 패스 플레이를 중심으로 한 기술축구라는 확실한 컬러에도 불구하고, 제주는 우승권에 접근하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고비마다 스스로 무너졌다.
올 시즌 비로소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강팀' DNA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강팀이 되기 위한 '경험'을 쌓았다. 올 시즌 누구도 제주를 쉽게 보지 못했다. 전북조차도 제주와 붙으면 공격 보다는 수비에 초점을 맞춘다. 제주는 내려서는 팀을 맞아 자기만의 축구를 이어나갔다. 올 시즌 제주가 치른 경기 중 주도권을 내준 경기는 거의 없다. 결과가 꼭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제주가 준비한 축구를 펼쳤다. 제주는 상대의 견제와 신경전에 맞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 속에서 승점을 얻어냈다.
무엇보다 고비에서 주저 앉지 않았다. 제주는 매 여름마다 여름징크스에 발목이 잡혔다. 국내 유일의 섬팀이라는 핸디캡을 감안해야 하지만, '강팀'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벽이기도 했다. 제주는 올 시즌 그 지긋지긋한 징크스를 넘었다. 12경기 무패행진의 시작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7월이었다. 위기를 넘길 힘까지 갖게 됐다. 잘 나갔던 제주는 우라와 레즈와의 ACL 16강 2차전 완패와 이어진 징계 등으로 수렁에 빠졌다. 예전의 제주라면 거기서 이미 무너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 감독이 강조한, 어느 순간에도 승리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는 '위닝 멘털리티'가 자리하며 중요한 순간, 무너지지 않고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제주의 스쿼드가 좋다고 하지만, 제주에서 우승을 경험하거나, 큰 경기에서 성과를 낸 선수는 거의 없다. 잠재력을 인정받거나, 하위권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선수들이 팀의 주축이다. 마지막 순간 가장 중요했던 두번의 맞대결에서 전북에 모두 패한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승을 해보고, 국제무대를 경험한 전북 선수들은 가장 중요한 순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열심히 뛰었지만, 제주에는 그 힘이 부족했다. 올 시즌 제주는 중요한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경험을 쌓았다.
제주가 진짜 '강팀'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년이 더 중요하다. 조 감독의 말대로 올해의 아쉬움을 반성하고,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 조 감독이 만든 토대 위에, 예전 같은 리빌딩이 아닌 클래스를 높일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중심에는 2017년 쌓은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은 중요한 순간, 제주를 일으키는 힘이 될 것이다. 단언컨데 올 시즌 제주는 실패하지 않았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