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서 맨손으로 해냈다, '축알못' 대표의 경남 승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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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수, 우리 직원이 최고다 최고!"

조기호 경남 대표(63)가 연신 엄지를 세웠다. 14일 경남은 서울 이랜드를 2대1로 꺾고 남은 2경기 결과에 관계 없이 다음 시즌 클래식 승격을 확정했다. 조 대표의 옷은 축축히 젖었다. 샴페인이다. 진동하는 술 냄새. 조 대표는 기쁨에 취했다. "승격이 좋긴 좋네!"

올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경남은 '논외의 팀'이었다. 가난한 도민구단. 전임 대표들의 방만한 운영으로 찢어진 살림. 조 대표는 '폐허'가 된 경남의 대표로 지난해 3월 부임했다.

▶설움

조 대표는 경남 진주 부시장, 창원 제1부시장을 역임했던 고위 공무원 출신이다. 부임 당시 조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가웠다. "공무원 출신이 축구에 대해 뭘 알아?" "정치권 기웃거리다가 낙하산 탄 것 아냐?" "딱 보니 축구 모르는 양반이 또 경남 말아먹겠네." 전임자들이 남긴 비릿한 유산. 조 대표는 무방비였다.

"어떤 분들은 면전에 대놓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상대방은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심장을 후벼 파는 그런 말 말이다. 솔직히 내가 축구 잘 모르는 건 사실이니까 뭐라 받아 치지도 못하고…." 이제 와서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자신을 폄하하는 건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팀을 낮춰보는 건 참기 힘들었다. "'축구 모르는 대표와 프로 경험 일천한 감독이 만났는데 경남이 뭐 되겠나'라는 말을 들었던 날은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승격 환희에 젖은 날에도 떠오르는 설움의 순간. 조 대표는 그 와중에 감독 걱정이다. "김종부 감독이 알게 모르게 꽤나 무시 당하는 순간이 있었다. 고교팀, 실업팀 맡고 와서 프로 경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김 감독이 보여주지 않았나. 김 감독은 경남에 최초로 우승을 안긴 지도자다."

▶몰라서 가능했던 일

아는 것도, 기댈 사람도 축구판엔 없었다. 조 대표는 맨땅에서 맨손으로 시작했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 있나. 나가서 돈 구해오는 게 일이다. 어디든 가서 후원을 받아와야 된다."

아는 게 없어 귀를 열었다. 편견도 버렸다. '비 선수 출신 스카우트는 선수 출신보다 떨어지는 안목을 가졌을까?' 조 대표는 동의하지 않는다. 브라질 빈민가 출신 무명의 23세 공격수를 꼭 영입해야 한다는 비 선수 출신 스카우트의 목소리. 조 대표는 직원을 믿었다. 그렇게 데려온 선수가 22골을 터뜨린 말컹이다. 이어지는 직원의 말. "한 명 같이 데려와야 됩니다." 70kg도 채 안되는 앙상한 체격의 미드필더. 조 대표는 또 믿었다. 리그 31경기 6도움을 올린 알짜배기, 말컹의 단짝 브루노 얘기다. "감독과 직원이 면밀히 확인한 선수들이다. 나는 밀어주면 되는 거 아닌가." 몰랐기에, 그래서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부임 1년 7개월

시작에 불과하다. "나이는 많아도 최재수의 왼발은 확실합니다." "정원진은 틀림 없이 경남에서 터질 겁니다." "여름 이후 체력 문제와 내년 클래식 대비를 위해선 권용현이 필요합니다." 조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성공한 영입으로 클래식 승격의 밑거름이 됐다.

구단 일에만 조용히 몰두했다. 푼돈이라도 벌고자 여기저기 뛰었다. 부임 1년 7개월이 지난 지금, 조 대표의 손엔 챌린지 우승 메달이 들려있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설움의 순간들. "이 작은 메달 하나가 다 씻어주네…."

'축알못' 조 대표의 경남 승격기엔 마침표가 찍혔다. 이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선수와 직원들이 클래식 자신 있다고 말한다. 그거면 된다. 나는 우리 선수와 직원을 믿는다."

창원=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