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건국 이래 최장 연휴였던 올 추석, 덩달아 극장가 역시 황금연휴 특수를 맞으며 활기를 되찾았다. 무엇보다 연휴 스크린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 드라마가 펼쳐져 눈길을 끌었다. 청소년관람불가, 최약체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으로 추석 흥행 정상을 꿰찬 형사 액션 영화 '범죄도시'(강윤성 감독, 홍필름·비에이엔터테인먼트 제작). 추석 극장가를 집어삼킨 '범죄도시'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2004년, 2007년 중국에서 넘어와 범죄 조직의 경계를 넘어 일반 시민들까지 위협하며 도시 전체를 장악한 왕건이파, 흑사파 사건을 영화화한 '범죄도시'. 사건 당시 범죄 조직을 일망타진한 강력반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형사 액션물로 추석 연휴 최절정이었던 지난 3일 개봉했다.
앞서 추석 극장가에는 전 세대 관객을 두루 사로잡을 굵직한 기대작이 대거 등판, 접전을 펼쳤지만 올해엔 스파이 액션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이하 '킹스맨2', 매튜 본 감독), 사극 영화 '남한산성'(황동혁 감독, 싸이런 픽쳐스 제작)을 제외하곤 이렇다할 블록버스터들이 없었던 상황. '킹스맨2'의 높은 기세에 한국 영화계는 저마다 몸을 사리는 추세였다. 추석 시즌을 겨냥한 신작들이 연달아 추석 이후로 개봉을 연기했던 가운데 '범죄도시'만이 호기롭게 추석 메인 시즌 출사표를 던진 것.
사실상 총제작비 70억(순 제작비 37억)으로 제작된 미들급 영화인 '범죄도시'의 흥행을 예측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일찌감치 1000여개의 스크린 수로 압도적인 물량 공세에 돌입한 '킹스맨2'와 '남한산성' 속에서 '범죄도시'는 600여개라는 열악한 스크린 수로 출발했기 때문. 티켓파워를 내세울 주연 배우들 또한 마동석, 윤계상의 '범죄도시' 보다는 아무래도 콜린 퍼스, 태런 에저튼의 '킹스맨2'와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의 '남한산성'이 더 우위에 있는 게 사실이었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역시 '범죄도시'에겐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범죄도시'는 이 모든 핸디캡에도 탄탄한 스토리, 스피디한 연출, 싱크로율 높은 배우들을 내세워 보란 듯이 극복, 관객의 입소문을 얻어 개봉 6일 만에 '남한산성' '킹스맨2'를 꺾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무서운 저력을 과시했다. 말 그대로 이변, 반전이었다.
'범죄도시'의 성공을 도운 건 스토리, 배우들의 열연도 있었지만 '남한산성' '킹스맨2'의 단점도 한몫했다. 2시간 2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과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를 이어간 '남한산성'과 달리 '범죄도시'는 곳곳에 허를 찌르는 코미디와 121분이라는 적절한 러닝타임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범죄도시'는 중장년층을 사로잡지 못한 외화라는 리스크와 속편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가진 '킹스맨2'과도 결을 달리하며 차별화를 뒀다.
이렇듯 '범죄도시'는 최약체를 가장한 추석 극장가 비밀병기였던 셈. 영리한 관객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범죄도시'는 개봉 7일 만이자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9일 누적 관객수 220만명을 기록, 손익분기점(200만) 돌파까지 단번에 해치웠다. 추석 연휴가 끝난 스크린은 당분간 비수기에 접어든 가운데 흥행 가속도가 붙은 '범죄도시'가 어떤 신기록으로 충무로를 놀라게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영화 '범죄도시'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