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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만평] 불편한 군단, '정치적 올바름'과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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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은 어떠한 편견도 포함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자는 주장에서 비롯된 사회적 운동이다. 인종, 민족, 성별, 장애, 종교, 직업, 나이 등을 근거로 한 편견에서 벗어나 차별을 가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어떠한 사안이든 차별이나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태도로 일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적 올바름'은 대표적인 다민족국가인 미국에서 당시 일반적으로 쓰이던 단어나 용어를 적절하게 수정하는 방향으로 활발하게 전개됐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인디언'이라는 말 대신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s)' 혹은 '퍼스트 네이션스(First nations)'라는 대체어를 사용하거나, 여성 승무원을 가리키는 '스튜어디스(stewardess)'와 남성 승무원을 일컫는 '스튜어드(steward)'라는 말보다 '플라이트 어텐던트(flight attendant)'라는 말을 보편화 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은 사회 전반에 걸쳐 편견과 차별을 배제하려던 첫 취지와는 다르게 모든 면에서 지나칠 정도로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사실 관계를 무시한 채 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나 문화 콘텐츠 등을 사회적으로 비판하려는 이기주의적 행동으로 변질됐다.

이에 따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 물건, 사건 등에 '정치적 올바름'에 기준한 잣대를 내밀고 편견이나 차별과 관련한 이슈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을 일컬어 'SJW(Social Justice Warrior, 소셜 저스티스 워리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들 'SJW'는 게임,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문화 콘텐츠에도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워 해당 작품이 얼마나 '다양성 이슈를 잘 담아냈는가'로 작품을 평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게임과 관련해 다양한 'SJW' 이슈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블리자드 FPS 게임 '오버워치'에 등장하는 캐릭터 '트레이서'가 게임에서 승리하면 취하는 자세에 대해 일부 유저가 "캐릭터 콘셉트와는 맞지 않게 엉덩이를 강조한 자세로 의미 없는 섹스어필을 하고 있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해당 자세는 '트레이서'가 고개만 살짝 돌린 채 뒤돌아 서있는 모습이었다.

이에 블리자드는 이례적으로 제안을 받아들여 해당 승리 자세를 새로운 자세로 변경했다. 변경된 자세는 옆으로 서있는 '트레이서'가 오른쪽 다리를 완전히 접은 채로 왼쪽 다리로 깨금발을 디디고 있는 자세였다.

바이오웨어는 그동안 유저들로부터 '정치적 올바름'을 신경 쓰는 개발사로 인식되었는데, 올해 3월 출시된 액션 RPG '매스이펙트: 안드로메다'는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 묘사로 논란이 됐다. 특히 캐릭터 디자인 중에서 여성 캐릭터는 현실적으로 묘사한 데 반해 남성 캐릭터는 미형으로 모델링 되었다. 또한, 다양한 피부색으로 묘사된 여성 커스텀 캐릭터 중에서 '백인'은 하나뿐이었고 유저가 흰 피부를 임의로 설정할 수 없었다.

여기에 개발자 중 한 명이 SNS를 통해 '백인 혐오' 논란을 일으켰고 스토리 작가가 과격 페미니스트로 알려지면서, '매스이펙트: 안드로메다'는 유저들로부터 반감을 샀다. 결국 바이오웨어는 '매스이펙트: 안드로메다' 개발 스튜디오인 몬트리올 스튜디오를 보조 스튜디오로 강등하고 '매스이펙트' 시리즈 차기작 및 DLC 제작 중단을 발표했다.

지난 8월 24일 PC 플랫폼 스팀에서 얼리액세스(미리해보기)로 출시된 '하이퍼 유니버스'도 일부 노출도 높은 삽화들에 수정이 가해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스팀 유저 평가는 '대체로 좋음'에서 '복합적'으로 떨어졌고, 개발사 씨웨이브소프트에서 수정된 삽화를 국내 서버에도 적용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국내 유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씨웨이브소프트 채은도 대표는 해당 내용을 언급한 공지사항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아트는 해당 아트를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유저분들께는 처음으로 하이퍼유니버스를 플레이하는데 하나의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는 게임의 접근성을 해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채은도 대표는 "이러한 방향은 얼리억세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정된 것으로 한국버전도 9월 14일로 시즌 종료 및 새로운 시즌에 맞추어서 패치로 적용되는 피쳐이며 얼리액세스 버전과 한국 버전의 리비전 관리의 어려움으로 컨텐츠의 통일성을 유지하지 못한 점 정말 유감스럽다"며 "컨텐츠의 통일성 및 버전 관리에 대해 더 노력하도록 하겠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게임 업계에서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된 이슈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취지만 보자면 좋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지나친 간섭으로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 소설, 만화, 드라마, 영화 등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문화 콘텐츠에도 '정치적 올바름'을 배경으로 잣대를 내세워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일이 절대 적지 않다"며 "197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정치적 올바름'은 도를 넘어선 간섭으로 1990년대부터는 인식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림 텐더 / 글 박해수 겜툰기자(gamtoon@gamt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