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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의 센터서클]9회 연속 WC 본선 진출,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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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30여년 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과 처음 만난 것은 1954년 스위스 대회였다. 두 번째 월드컵은 32년이라는 인고의 세월 끝에 싹이 텄다. 1986년 멕시코 대회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어느덧 세 바퀴를 돌았고, 그사이 '월드컵 쉼표'는 없었다. 지구촌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축구로선 내년이 월드컵 연속 출전의 또 다른 32년을 맞는 해다.

다행히 역사는 후퇴하지 않았다. 한 걸음 전진했다. 2017년 9월 6일 새벽, 러시아로 가는 길이 마침내 열렸다. 한국 축구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룩했다. 모든 것을 떠나 '대단한 사건'이다. 월드컵에 9회 연속 출전한 국가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단 5개국 뿐이다.

대놓고 미소를 지어야 할 정도의 '자랑스러운 쾌거'다. 하지만 찬바람만이 요란하다. 웃을 수가 없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환희는 없고, '천신만고', '구사일생', '어부지리', '기사회생' 등의 수식어가 한국 축구의 현재를 설명하고 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 결국 결과만 남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한국 축구는 또 한번 고지를 정복했다.

그러나 '이대로 라면…'이라는 되물음에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최종예선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후퇴하고 있는 한국 축구'를 부정할 방법이 없다. 물론 월드컵 본선 진출이 쉬웠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본선 진출에 성공하고도 이처럼 암담했던 적 또한 없었다. 자존심은 더 처참히 짓밟혔다.

4승3무3패, 최종예선에서 조 1위 한번 못했다. 중국과 카타르에도 일격을 당하며 끝내 '원정 무승'으로 마감했다. 시리아에도 잡힐 뻔한 '진땀 여정'에 씁쓸한 뒷 맛만 남았다. 여기에다 사령탑이 교체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암울한 작금의 상황, '월드컵 본선이 더 걱정'이라는 팬들의 원성에 그저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형국에 미래를 논할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하지만 축구는 멈출 수 없다. 당장 9개월 후인 6월 14일에는 러시아에서 월드컵이 개막된다.

그래도 대대적인 체질 개선은 불가피하다. 월드컵 진출 실패를 가정한 전방위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

먼저 대한축구협회가 출발점이 돼야 한다. 정몽규 회장부터 바뀌어야 한다. 대표팀 위기는 감독 교체 타이밍의 실기에서 시작됐다. 늘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다. 때론 과감할 때는 과감해야 한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그랬다. 슈틸리케호는 지난해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 3월 중국(0대1 패)-시리아(1대0 승)와의 2연전 후 칼을 빼들어야 했지만 정 회장이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골든 타임'을 놓치면서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 됐다. 6월 카타르에 2대3으로 패한 후 '경질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대표팀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사실 축구협회의 의사 결정 구조에 대한 우려는 줄기차게 제기됐다. 지나치게 신중한 나머지 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존재했다. '신중'과 '우유부단'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바로 정 회장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아울러 분위기 전환도 필요한다. 월드컵 예선 과정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 인적 쇄신이 필요한 곳에는 즉각 주사를 놓아야 한다.

선수들도 현재의 위치를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흔들린 대표팀의 최대 적은 선수단 내부의 파열음이었다. '세대 단절'에서 시작된 갈등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은 허울이었다. 팀보다 개인을 앞세웠다. 대표팀이 이처럼 갈기갈기 찢겨진 적이 없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갈등의 골은 깊었다. '절대 선'인 선수는 없다. '나'를 버리지 않고는 희망도, 미래도 없다. 모두가 팀을 위해, 국가를 위해 희생, 헌신할 때 비로소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월드컵 진출로 가슴을 쓸어내린 신태용 감독도 자신의 색깔을 되찾아야 한다. 지휘봉을 잡은 후 치른 0대0 무승부 2경기는 우리가 알던 신 감독의 축구가 아니었다. 벤치에서 잔뜩 주눅든 표정도 그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신 감독의 최대 강점은 무한 자신감이다. 현재 절실히 요구되는 리더십이다. 자신감을 갖고 '신태용만의 팀'을 만들어야 한다. 키를 쥐고 있는 신 감독이 선수단 변화를 주도해야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 "남은 기간 신태용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와 팬들이 원하는 축구를 하겠다"는 바로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절대 지지'를 바랄 순 없지만 팬들의 시선도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비판은 너무나 당연하다. 다만 애정은 거두지 말았으면 한다. 한국 축구의 힘은 팬들의 관심에서 시작된다. 한 발 더 나아가 월드컵 뿐 아니라 K리그에도 사랑을 줄 때 한국 축구는 더 건강해 질 수 있다. 팬들의 관심과 애정은 분명 한국 축구 부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 축구는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상처만 남았다. 헹가래 칠 때는 더더욱 아니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왜 잘못됐는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절대 잊어선 안된다. 모바일 팀장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