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 여행테마로는 문화유산 탐방도 괜찮다. 그중 고풍스럽고 기품 있는 한옥과 소담한 정원이 어우러진 우리의 전통유산 기행도 운치 있다. 삼복더위에 떠올리는 대청마루는 시원, 상쾌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한옥 마루에 앉아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는 것은 계곡, 해변이 부럽지 않다. 이 같은 풍류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경북 안동에 자리한 도산서원-병산서원도 꼽을 만하다. 이들 두 서원은 마침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세계유산잠정목록으로, 이미 세계적인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침 병산서원은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에 속하고 있어 연계관광을 꾸려도 좋을 곳이다. 하회마을에서는 전통 세시풍속, 한옥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영남 유학의 중심 '도산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자리한 도산서원(사적 제170호)은 대한민국 대표 서원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서원은 1574년(선조 7) 퇴계 이황(1501~1570년)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의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이 생전에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 영역과 퇴계 사후에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 영역으로 나뉜다. 서원 전체 영역의 앞쪽에 자리 잡은 건물들은 도산서당에 속하고, 그 뒤편에 들어선 건물들은 도산서원 영역이다.
서원 경내는 동서재(東西齋)와 전교당(보물 210), 위패를 모신 상덕사 등 다양한 건축물로 구성되어있다. 1575년(선조 8) 한석봉의 글씨로 된 '도산(陶山)'이라는 사액을 받음으로써 영남 유학의 중심이 되었다.
서원 안에는 약 400종 4000여 권이 넘는 장서와 장판, 그리고 퇴계선생의 유품이 남아 있다. 도산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소수서원·숭양서원 등과 더불어 온존했다.
퇴계선생은 여러 벼슬을 거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서당을 짓고 학문 연구와 후학양성에 힘썼다. 처음 '계상서당'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으나 공간이 비좁아 집 뒷산 너머 도산 자락에 직접 설계한 도산서당을 열었다. 건물들은 한결같이 간결하고 검소하게 꾸며져 퇴계의 인품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 건물의 모든 이름을 퇴계가 손수 붙여 성리학적인 의미 또한 부여했다.
퇴계 선생은 관직을 멀리하는 등 진퇴를 분명이 한 대표적인 선비로 꼽힌다. 자리에 연연하는데 익숙한 요즈음의 시각으로는 드문 캐릭터다. 선생은 만년(65세, 1565년)에 우리말로 지은 '도산십이곡'의 열 번째 시조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부귀가 보장된 벼슬자리를 '딴 데 마음'이라 여겼던 것이다. 선생은 본래 벼슬에 큰 관심이 없었다. 주위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여 34세에야 과거에 급제하며 벼슬에 나섰다. 관료 시절에는 중종 임금을 모신 자리에서도 직언을 했는가 하면, 암행어사로 나아가서는 탐관오리도 징치했다. 선생은 관직에 나선지 10년쯤 지나서부터 벼슬에서 물러날 생각을 가졌다. 때문에 벼슬길 36년 중 실제 관직 재임은 10년 남짓, 이보다 긴 세월을 고향에서 지냈다.
선생은 50세 되던 해에 고향인 안동 계상(溪上)으로 돌아왔다. 1000원 권 뒷면에 있는 겸재 정선(1676∼1759)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에 등장하는 초가집이 바로 이곳이다. 퇴계는 당시 자신의 호를 '시내로 물러난다'는 뜻을 담아 '퇴계(退溪)'로 정했다.
한편, 도산서원은 사액서원이다. 퇴계가 세상을 떠난 후 삼년상을 마치고 조성되었다. 1575년 8월 낙성과 함께 선조로부터 사액을 받았고, 1576년 2월에 사당을 준공하며 퇴계 선생의 신위를 모셨다.
도산서원은 전망이 압권이다. 정문인 진도문(進道門)에 이르러 올라오던 길을 되돌아보면 안동호 일원이 한눈에 펼쳐진다.
퇴계 선생이 계상과 도산에서 추구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선생은 유학이 지향하는 하늘의 이치(天理)와 삶의 도리(人道)에 천착했다. 더불어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공동체 또한 간절히 바랐다. 사람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선생은 이것이야말로 천지가 제자리를 잡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 착한 사람을 길러내려면 단순한 지식 전달로만은 안 되는 것이다. 스승이 먼저 실천하고 제자가 이를 본받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게 선생의 가르침이다. 솔선수범. 선생은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한 해법으로 오늘의 시민학교와도 같은 것을 이미 450여 년 전에 열어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자연을 담은 '병산서원'
대한민국 서원 중 주변경관과의 조화를 따지자면 단연 병산서원(屛山書院)이 으뜸이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 자리한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1542~1607년)과 그의 셋째 아들 류진을 배향한 곳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사라지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빼어난 건축미를 인정받고 있다. 1863년(철종 14년) '병산(屛山)'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낙동강 물굽이가 S자를 그리며 흐르는 물길의 중심에 화산 자락이 있다. 그 양쪽 끝에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풍산들녘을 지나 산굽이를 돌아서면 낙동강변이 바라보이는 곳에 병산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병산서원은 서원 앞쪽의 화산이 마치 병풍을 두른 듯하여 '병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복례문을 지나 서원 안으로 들어서면 높은 계단 위에 자리 잡은 만대루가 나서고 사당 존덕사, 서원의 중심으로 학생들이 강의를 듣던 입교당, 책을 인쇄하던 장판각 등이 자리하고 있다. 아울러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과 학생들의 기숙사로 쓰였던 동재와 서재도 함께 들어서 있다.
병산서원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만대루를 꼽을 수 있다. 2층으로 지어진 대강당으로, 서원 앞에 펼쳐진 낙동강과 너른 백사장, 병풍과도 같은 앞산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 포인트가 된다.
병산서원(사적 제260호)의 전체 면적은 2만 2522㎡(6,825평)에 이를 만큼 널찍하다. 하지만 주변 경관을 따지자면 이보다 훨씬 넓은 대자연을 함께 거느리고 있다.
건축전문가들은 병산서원이 군더더기 없는 공간미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라고 평가한다. 특별한 조경시설이 없지만 워낙 주변 풍광이 뛰어나다보니 그 자체가 곧 서원의 경관이라는 것이다. 특히 서원 마당 곳곳에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여름철 분홍색 배롱나무꽃이 화사함을 더한다. 서원에는 류성룡의 문집을 비롯한 각종 문헌 3000여 점이 보관되어 있다.
◆여행메모
▶가는 길=◇도산서원= 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풍기 IC~안동~안동호~도산서원 ◇병산서원=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IC~경북도청~하회마을
▶음식=안동에는 한우와 간고등어, 헛제사밥, 찜닭 등 다양한 별미거리가 있다.
◆사하사랑채노인복지관 어르신 & 괴정초등학교 학생 'Let's Go-세계유산 잠정목록 도산서원·병산서원 편'
GKL(그랜드코리아레저)사회공헌재단(이사장 이덕주)이 후원하는 'GKL사회공헌재단과 함께 만나는 UNESCO세계문화유산탐방, Let's Go-세계유산 잠정목록-도산서원·병산서원 편'이 지난 7월 8~9일 1박 2일 일정으로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일원에서 진행됐다.
사하사랑채노인복지관(임종린 관장) 회원 어르신 14명과 괴정초등학교 어린이 13명이 도산서원, 월영교, 하회마을, 병산서원 등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탐방에 나선 것. 이번 탐방 프로그램은 1-3세대가 함께하며 문화적 소외감을 극복하고 노인과 아동-청소년의 세대 간 교류 확장을 통한 '세대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그 의의를 두고 있다.
첫날 일정으로 도산서원과 월영교, 민속박물관을 찾았다. 문화해설사의 설명 속에 도산서원을 찾아 우리의 옛 선비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학덕을 쌓아갔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도산서원의 미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해당 건물을 찾아가 퇴계이황선생의 숨결을 느끼는 한편, 인증사진을 찍는 등 재미난 미션활동도 펼쳤다.
일정을 마친 후 숙소에서는 1·3세대 통합을 위한 레크리이에션, '문화유산 골든벨' 시간도 가졌다. 간단한 넌센스·문화유산 OX퀴즈는 물론, 수준 높은 문제도 어르신과 아이가 함께 머리를 맞대니 척척 풀어낼 수 있었다.
이튿날은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찾았다. 우선 하회마을을 찾아 이곳을 방문했던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일화와 더불어 삼신당,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인 충효당, 부용대에 관한 얘기를 문화해설사를 통해 들었다.
멋진 절경이 펼쳐진 부용대에 올라서는 두 번째 미션, '모방사진찍기'에도 참여했다. 다양한 사진을 보며 어르신과 아이들 모두 즐겁게 촬영에 임했다.
금번 1·3세대 문화유산 탐방을 통해 어르신과 아동 모두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를 하는 한편, 서로 친손자, 친할아버지-할머니와도 같은 끈끈한 유대감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고 입을 모았다. <후원=GKL사회공헌재단>